친구들이 만나서 담소를 나누는 중에 한 친구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추고 숙연해졌다. 자기 아는 사람이 은퇴 방송인인데 요즘 나이가 들면서 이웃돕기를 매일 실천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매일 3천 원씩을 따로 주머니에 넣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 돈을 넣고 다니다가 힘겨워 보이는 폐지 줍는 노인을 만나면 슬며시 손에 쥐어드린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월 10만 원 정도의 돈을 그런 방법으로 매일 이웃돕기로 쓴다는 생각인데 기발하고 대단한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서 차내가 썰렁했다. 폰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한 남자가 눈 앞에 불쑥 손바닥을 펴서 디미는데 동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차 안이라 바짝 긴장되면서 슬며시 겁이 났다. 돈을 꺼내려 가방을 열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엄습하면서 순간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때마침 읽고 있던 것이 성경이다 보니 그 사람이 혹여 믿는 사람이면서 외면하냐? 이렇게 비웃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꼼짝않고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한참을 서 있던 그 남자가 내 앞을 떠나고 나니 새삼 다리가 후들거리며 동냥은 못 주나마 쪽박까지 깬 것 같은 심경이 되어 마음이 더욱 착잡했다. 내가 지금 도움을 못 준 야박함이라는 잘못 외에 아무 잘못이 없는 그를 마치 폭력배 취급을 한 셈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많이 미안했다.
예전에 고향 선배님으로부터 들었던 50여 년전 미국 첫 방문 때의 회고담 한 토막이 생각났다. 미국이 밤이면 치안이 취약해서 잘 나다니지 못하는데 바지 뒷주머니에 1달러 화폐 몇 장을 넣고 다니다가 흑인이 손 내밀면 두말없이 몸을 굽히고 뒷주머니를 손으로 가리키라고 교육을 받았기에 그대로 행하고 다녀 위기를 모면했다는 회고담이었다. 양복 윗옷 속주머니에 지갑을 꺼내려 손을 넣었다가는 권총을 뽑는 것으로 오해받아 큰 변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까지 상상할 일도 못되는 아주 작은 일이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회개했다. 하나님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기보다는 범죄자 취급을 해서 마음으로 모욕한 죄 용서해 주시고 긍휼지심이 없어 조금이라도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손톱만큼도 없이 경계하기에만 바쁜 이 좁은 소견의 믿음 없음에 회개했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