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말 어느 날 밤. “여보, 빨리 피해”라는 말을 남기고 아내를 먼저 구한 뒤 화재로 숨진 남편의 소식을 접했다. 그 짧은 뉴스 보도는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지역이라 더욱 오래 마음에 남았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튀어나온 그 한마디는 계산도 조건도 없는 사랑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냈다. 신약성경에서 사랑은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고전 13:5)라고 가르친다. 나는 그 말씀 앞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가? 요즘은 자녀가 결혼해 분가하면 부부 둘만 20~30년을 함께 살아가는 시대이다. 말 잘하는 능력보다 서로의 건강을 살피는 눈길, 무심한 듯 챙기는 속정이 더 중요해진다. 성경은 부부의 관계를 단순한 동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한다. 즉, “이러므로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창 2:24)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라는 말은 이제 추상적인 낭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책임이다. 나는 과연 배우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날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인천 인근 경기도의 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속 80대 남편의 선택은 이 질문을 더 깊게 만든다. 그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불을 알아차리자마자 아내부터 깨워 대피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연기 과다 흡입으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본인이 먼저 나왔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난다. 하나님 말씀에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느니라”(요일 4:18) 하신다.
근 30년을 소방 지휘관으로 불철주야 재난 현장을 누비며 물불 안가리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느라 수많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보아왔다. 그러는 와중에 암 수술을 받게 되었고 결국 공무상 재해로 승인을 얻었다. 여름철 강과 수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익사(溺死) 사고들 가운데 남녀가 함께 희생된 경우, 여성이 먼저 물에 빠졌을 것이라는 통계적 분석을 접한 기억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 추정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의 사랑은 위기 앞에서 종종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향해 몸을 던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1998년 개봉된 영화 『타이타닉』에서 잭은 로즈에게 말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당신을 만난 거야.” 그리고 유유히 항해하던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면서 침몰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 잭은 나무조각 위에 로즈를 태워주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이 장면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에서 가라사대, 사랑이란 결국 자신을 내어주는 선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가 다시금 생각난다. 이 사랑은 부부에게서만 머물지 않는다. 연인과 연인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 형제와 형제 사이에서도 같은 맥박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낯선 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손을 내미는 용기 등이 신앙의 모습이다. 성경은 이웃 사랑을 신앙의 핵심으로 선언한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그리고 이 모든 사랑의 뿌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조건 없이 먼저 내어주고, 계산 없이 품어주는 사랑.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이미 건네진 사랑 말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래서 묻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더 많은 말인가, 더 큰 성취인가? 아니면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불러야 할 이름을 아는 마음인가? 사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자의 안부를 묻는 한마디,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발걸음, 가족을 향한 기다림,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닮아가려는 작은 결단이면 충분하다. 결국 답은 분명하다. 바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사랑이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