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성에 보내는 탐사선을 ‘패스파인더(Pathfinder)’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길(Path)의 발견자(Finder), 즉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독일 거주 당시 만난 많은 교포는 고 박정희 대통령을 깊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964년 12월, 서독 탄광 지역 회관에서 있었던 눈물겨운 상봉 때문입니다. 당시 500여 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석탄가루 묻은 손으로 고국의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울먹였고, 현장은 순식간에 통곡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끝없이 뻗은 독일의 아우토반을 직접 달려보며 우리나라도 이런 길을 내길 간절히 꿈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돈도 없는데 무슨 고속도로냐,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라는 국회의 거센 반대가 앞길을 막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의 백년대계인 길을 내기 위해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일 정부로부터 1억 5천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도입했는데, 이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3년 치 급여를 담보로 코메르츠 은행에 예치하는 고통스러운 결단 끝에 마련된 자금이었습니다. 마침내 428km의 경부고속도로가 놓였을 때, 그 아스팔트 아래에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흘린 그들의 땀과 눈물이 먼저 깔려 있었습니다.
성경에도 광야에서 길을 내는 사람, 세례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낮은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을 깎아 험하고 굽은 길을 곧게 펴라고 외쳤습니다. 기계도 없던 시대에 사막에 길을 내라니,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인용한 이사야 40장 3절은 이것이 흙과 돌로 내는 물리적 길이 아님을 일러줍니다. 요한이 태어나기 약 750년 전, 이사야는 이미 이렇게 예고했습니다.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이는 결국 사람의 마음속에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라는 영적인 부르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내라고 한 길은 한마디로 마음의 길입니다. 2천 년 전 그는 철저히 주님이 오심을 마음으로 준비한 자였습니다. 길을 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그리고 이웃에게 오실 수 있도록 통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도 사순절을 맞이했는데 우리 마음에 골짜기, 산, 굽은 길이 있다면 이 길을 잘 닦아서 주님이 오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내 마음의 길을 냅시다.
어찌 보면 신문은 새로운 길을 독자들에게 열어주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사람이 2022년부터 장로신문에 글을 써 왔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이번 주로 글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바라기는 장로신문사의 계속된 발전을 위해서도 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한호 목사
<강원노회 노회장•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