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베드로는 주님이 메시아라고 확신했을 때 희망과 기쁨이 가득했다. 주님께서 왕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실현될 때가 왔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신다니! 메시아가 죽음을 당한다면 메시아가 아니시지 않은가!
베드로는 말했다.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많은 고난을 당하시다니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이 베드로가 막아서라도 주님을 지키겠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의 격렬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없을 때 그는 메시아의 제자가 아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는가?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지상적(地上的) 시야(視野)는 지금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베드로와 열한 명의 사도들에게도 너무도 멀리 있었다. 가이사랴의 그 소경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이 걸어 가는 것이 보이나이다.”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오셨다. 어느 날 베드로,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회당장 야이로가 달려와 열두 살 난 외동딸이 위독하다면서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가셨다. 도착했을 때 이미 그 딸은 숨진 뒤였다. “울지 말라.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달리다굼!(Talitha Qum)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소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걸었다. “어서 딸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다볼산(Mt Tabor)의 높이는 560m밖에 되지 않은 원추형(圓錐形)의 작은 산이다. 옛날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 북방에서 수십만 이방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여사사(女師事) 드보라가 이들을 맞아 격파한 곳이 다볼산이다. 산 정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 몸에 나타내시며 희고 투명한 옷을 입고 계셨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어졌더라.”
예수님 옆에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신다면 내가 여기서 초막(草幕)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홀연히 빛나는 구름이 세 제자를 감쌌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초막의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세 제자는 눈 앞에 주님이 계시기에 안도했다. 언제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 괴로울 때도, 슬픈 일을 당할 때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함께 있느니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아멘.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