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에 정복을 당한 유대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그들은 주님을 총독 빌라도에 넘겼다. 산헤드린 법정은 주님을 결박했다. 그들은 예수를 끌고 갔다. 마치 어린 양을 도수장(屠獸場)으로 끌고가듯 했다. 곤욕과 심문을 당하셨다. 가야바의 집에서 빌라도의 관저까지는 1.6km 정도라고 한다. 예루살렘 거리는 아침 시간이 되었다. 밤을 새워 재판을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을 자주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믿고 용서함을 받았지만 유다는 후회했으나 절망했고 멸망했다. “그의 정죄(定罪)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가룟 유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탄식과 고뇌와 분노의 감정이 되었다. 받은 은 삼십은 독(毒)이 되어 독사(毒蛇) 같이 자신을 쏘고 있었다. 양심이 그를 때렸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가? 하찮은 은 삼십에 내 주를 팔다니~!’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돈을 되돌려 주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배반하기 전에 돌려 주었더라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노라.”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아니었다. 자신의 죄를 고백했으나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후회하는 유다의 고백을 듣고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은을 성소에 던져 넣었다. 그는 물러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셨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더 이상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유월절이면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에 따라 빌라도는 백성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은 뜻밖에도 “바라바로소이다.”라고 대답했다. 빌라도는 놀랐다. 백성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이었지만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선동에 넘어가 있었다.
어떤 신학자는 빌라도가 바라바는 절대로 무죄 방면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반역, 살인, 강도 등 중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지만 우리 주님께는 죄를 찾지 못 했기 때문이다.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꾸고 권해 주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빌라도에게는 분명한 경고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사악(邪惡)한 부르짖음이었다.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말했다. “어찜이냐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더욱 소리질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고민에 빠졌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애쓴다.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제사장과 백성들은 그 죄의 책임이 자기들에게 돌려지는 것에 동의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참으로 가증(可憎)스러운 외침이다.
십자가형은 오로지 로마인들만 사용하는 사형틀로서 그 교묘함과 잔인함이 극한의 고통을 주는 처참하고 끔찍한 사형 방법이었다. 십자가를 땅에 세우고 손과 발에 못을 박아 몸을 매달아 놓는다.
몸의 무게가 못에 걸리게 해 죽을 때까지 처절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후일 최초의 그리스도인 황제인 콘스탄티누스는 칙령(勅令)으로 십자가형의 사용을 금지했다.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로마 원로원은 사형 언도로부터 집행까지 죄수에게 최소한 열흘의 시간을 주도록 했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는 즉결 처분하듯이 했다. 그리고 온갖 모욕적인 행위와 언어를 행사했다. 옷을 벗기고 홍포(紅袍)를 입혔다. 왕과 황제가 입었던 홍포를 흉내내어 군병들이 입은 붉은 겉옷을 입혀 비웃고 놀린 것이다. 이토록 부끄러움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흰옷을 입혀 주신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