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생명의 시발역이요 종착역, 신생아실에서 영안실까지 곧 자궁에서 무덤까지 공존하는 곳.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아우성을 치며 북적대는 곳, 그곳이 바로 병원이다. 삶의 시작과 끝이 압축되어 한 화폭에 그려지는 곳. 병원은 생명의 재판소 같기도 하다. 암 선고, ‘시한부 생명의 판정’-죽음이 마치 지시처럼, 명령처럼 떨어진다. 환자마다 의사의 선고 앞에 떨며 두려워한다.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구원을 바라는 가련한 절규가 메아리친다. 진단 결과가 투병의 힘을 더하기도 하고 아주 빼앗기도 한다. 죽음을 선고받고 나면 한 톨 남아 있는 힘마저 말라버린다. 의사의 진단은 무섭기 그지없다. 의사가 선고한 시간만큼만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병이 죽인 것이 아니라 낙담이 그를 죽인 것이다. 쇠얀 키에르케고어는 그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다.
병원이란 죽음이 처절한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따라서 삶을 향한 아우성과 몸짓 또한 그만큼 더욱 강렬해 보인다. 죽음의 침에 쏘인 사람들의 모습에 나타난 절망의 그늘은 삶을 향한 갈망의 거짓 탈이다. 실상 그들 가슴속에서 이글대고 있는 생명의 갈구는 용암보다 뜨겁고 활화산보다 폭발력이 크다.
나는 그것을 맞은편 침상의 위암 선고를 받은 음악인의 영혼에서 강렬하게 읽었다. 그는 아주 가벼운 위암 초기라며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영혼은 죽음의 그림자 앞에 떨고 있었다. 2~3일을 지켜보던 중, 주일 아침 불쑥 예배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밑도 끝도 없는 나의 제안에 그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자석에 끌린 듯 예배실로 따라 내려왔다. 찬송가(통일)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을 함께 부르다 그만 그는 흑흑거리고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는 군 시절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간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다 시험에 빠져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깜짝 놀랄 만큼 첫사랑을 회복해 지금은 분당의 한 교회 지휘자로 섬기고 있고, 부인은 지금껏 병원 예배 도우미로 봉사중이다.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자기 백성을 찾으신다.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