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축시대 세상 읽기] 호주의 양심, ‘도둑맞은 세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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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문제는 호주의 역사적인 과제이다. 원주민은 5만여 년 전부터 호주 대륙에 거주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6만 5천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이주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원주민은 문자 없이 언어로 문화를 전승했다. 호주 전역에 75만~100만 명이 5~600개의 부족으로 흩어져 살면서, 250개의 독립된 언어와 500~800여 개의 방언을 사용했다.

호주가 1971년 인구조사(Census)에서 최초로 원주민을 집계할 때 그 수는 11만 5천953명에 불과했다. 이때부터 원주민의 호주 시민권을 공식 인정하고 우대정책을 시행했다. 원주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원주민 권리 옹호 운동도 활발해졌다. 원주민의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자 인구가 변화했다. 2021년 인구조사에서 확인한 원주민 인구는 81만 2천728명으로 늘어났다.

1788년 영국이 호주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질병과 분쟁으로 급격하게 원주민 인구가 줄고 문화를 상실했다. 현재 전승되는 원주민 언어는 123개지만, 90%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아이들이 첫 언어로 배우고 전승하는 언어는 12~14개에 불과하다. 영어와 원주민 언어를 결합한 크리올(Kriol)이나 윰플라톡(Yumplatok) 같은 새로운 언어들도 나타나고 있다.

원주민 문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도둑맞은 세대’(The Stolen Generation) 정책이다. 호주 정부가 교회와 복지단체와 함께 1910년부터 1970년대까지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수용시설과 백인 가정으로 보냈다. 정부는 원주민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수 혈통 원주민은 자연 도태하고 백인 혼혈 아동은 교육을 통해서 사회 하류 계층으로 흡수하려고 했다.

호주 정부의 동화정책은 인종차별과 원주민 문화 말살을 초래했다. 백인 가정 입양아들은 고유 언어를 잃어버렸다. 시설에서는 아이들이 고유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전통 관습도 버리라고 강요하고, 부모와 연락을 차단했다. 수용 아동은 열악한 시설에서 학대와 방임을 겪었다. 명목상 임금을 받고 가사 도우미나 농장 일꾼 등으로 일했다. 기록 미비로 정확한 숫자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10만 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도둑맞은 세대 아동은 뿌리를 상실하고 심각한 심리적 고통과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도둑맞은 세대와 그 후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이들은 일반 원주민보다 건강 상태가 나쁘고, 실업률과 범죄율도 높다.

호주 사회는 1980년대 초반에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1981년 역사학자 피터 리드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도둑맞은 세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학자들은 정부의 강제 격리 정책이 조직적인 국가 정책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90년에 원주민 작가 바바라 커밍스(Barbara Cummings)가 다윈의 레타 딕슨 아동 수용소에서 겪은 생활을 책으로 출판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겪은 가혹한 매질, 정서적 학대, 열악한 생활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가족과 친족 네트워크에서 단절된 채 자라난 세대가 겪은 정체성 혼란과 트라우마를 털어놓았다. 저자는 기록이 곧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원주민들 스스로 가족 찾기와 기록 복원 활동을 전개하고, 교회와 양심 세력이 법적 보상 운동을 전개했다. 1997년에 호주 정부가 종합 보고서를 발표하고 집단학살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드디어 2008년에 캐빈 러드 총리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의회에서 공식 사과를 했다. 원주민의 눈물에 공감한 양심의 승리였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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