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삶은 예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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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콘서트에 다녀왔다.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시는 우리 교회 권사님이 작품 활동 17년을 기념하는 특별 공연에 담임목사를 초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직접 공연장에 앉아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한글로 캘리그라피를 써 내려가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공연은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전통 무예와 국악 향피리, 성악과 영상이 결합된 하나의 거대한 통합 예술이었다.

유명 작가인 권사님이 우리 교회 교인이라는 사실도 자랑스러웠지만, 콘서트에서 그분이 보여준 신앙은 온몸을 전율케 했다. 작품에 대해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 권사님은 최근에 자신이 예배때 받은 말씀과 담임목사인 나를 언급했다. 목회자로서 더없이 영광스럽고도 송구한 순간이었다. 콘서트에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은 ‘호흡’이라는 큰 글자였다. 작가는 그 곁에 작은 글씨들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그랬다. 주기도문이었다. 온 관객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작가는 화려한 붓놀림으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당당하게 적어 내려갔다.

그 자리에는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권사라는 사실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한 작가의 공연을 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가장 거룩한 ‘산 제사’임을 직감했다. 무대는 그대로 예배당이 되었고, 붓끝에서 번지는 먹향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문득 2년 전 그분이 보내준 전화 녹음 파일이 떠올랐다. 당시 ‘용의 해’를 맞아 기업들로부터 용 그림이 들어간 퍼포먼스 의뢰가 쇄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권사님은 단호했다. 자신은 기독교 작가이기에 성경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용의 형상을 그리는 일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상당한 금전적 이익이 보장된 기회였음에도,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담담히 거절하는 그분의 음성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세상이라는 치열한 생업의 현장에서 신앙의 순결을 지켜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독한 싸움을 이어왔는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콘서트의 여운 속에 다시금 그때의 감동이 밀려왔다. 성도들이 이토록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믿음을 증명해내고 있는데, 나는 목회의 현장에서 과연 어떻게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리고 있는가. 성도는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고 하지만, 정작 목사는 성도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보며 눈물지으며 회개한다.

예배는 주일 아침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을 권사님은 붓끝으로 증명해 보였다. 사도 바울은 권면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날 내가 본 것은 화려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붓 삼아 써 내려간 하나님의 편지였다.

목양의 길은 성도를 가르치는 길이 아니라, 성도의 삶 속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며 함께 울고 웃는 길이다. 세상을 거슬러 신앙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성도들의 눈물겨운 분투를 보며, 나 또한 더 진실한 목자가 되겠노라 다짐해 본다. 강단 위에서의 외침보다 삶의 현장에서 피워 올리는 성도들의 작은 순종이 오늘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임을 믿는다.

공연장을 나오며 나지막이 읊조려 보았다. “주님, 저 또한 제 남은 생애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한 편의 캘리그라피처럼 아름답게 써 내려가게 하소서. 삶의 모든 순간이 향기로운 예배가 되게 하소서.”

김상수 목사

<대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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