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원 졸업 후 첫 전임 사역지에서 담임목사님이 임지를 옮기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1년 3개월 만에 사역지를 옮기게 됐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오래 사역할 수 있는 교회로 보내 주십시오. 무엇보다 아버지 같은 담임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2002년 부임한 이후 나는 여전히 이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부교역자로 시작해 이제는 그 자리를 이어받은 담임목사가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원로목사님은 내게 참으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목사님은 나를 후임으로 정하신 뒤 스스로 한 가지 원칙을 세우셨다. 후임 목사가 교회에 확실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3년 동안 교회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코로나 기간 중 비교적 예배당이 넓은 본교회에서 노회를 열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 노회장이셨던 목사님은 노회라는 공적인 명분으로 교회에 오실 수 있었지만 전화를 드렸을 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약속했으니 이번 노회는 참석하지 않겠다.”
그것은 후임을 향한 배려를 넘어 평생 일궈온 포도원을 온전히 내어주려는 거룩한 물러남이었다. 내가 목사님을 뵙기 위해서는 교회 밖에서 약속을 잡거나 댁을 찾아가야 했다. 그럴 때면 목사님은 인자한 미소로 양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하나씩 일러주셨다. 그러나 그런 가르침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은퇴 2년째 되던 해 갑작스러운 담낭암 진단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 중 거동도 하시고 식사도 잘하실 무렵, 딱 한 번만이라도 교회에 다녀가시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지만 목사님은 끝내 거절하셨다.
4월에 발병하신 목사님은 그해 11월 훌훌 떠나셨다. 후임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신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녹여 자식의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다고 했던가. 나의 영적 아버지였던 원로목사님은 당신의 그림자를 지워 나의 길을 밝혀주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목사님이 떠나신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의 성도들이 바라는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가끔 성도들이 나를 ‘영적 아버지’라 불러줄 때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나는 과연 그들에게 아버지 같은 목자인가.
목양의 길을 걸으며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화려한 왕관을 쓰는 자리가 아니라 자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자리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오늘날 교회에는 가르치는 스승은 많지만 자녀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 원로목사님은 내게 권위를 세우는 법보다 후임을 세우는 법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스스로를 낮추고 양들의 울타리가 되는 목자의 길을 삶으로 가르쳐 주셨다. 목양은 결국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내 이름이 빛나기보다 성도들의 삶이 빛나기를 바라며, 내 목소리보다 주님의 음성이 그들의 심령에 울리기를 기다리는 길이다.
이제 나는 목사님이 남겨주신 그 길 위에 서 있다. 목사님이 나를 위해 당신의 존재를 지우셨듯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지워지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배운다. 성도들의 삶의 애환을 어루만지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아버지의 길이다.
김상수 목사
<대전영락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