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金亨錫, 1920~ ) 교수께서 최근 『나이 일흔에 절대 가서는 안 되는 세 곳』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남기셨는데 그 내용은 비단 「일흔 살 노인」 뿐만 아니라, 「여든이나 아흔이 된 노인」에게도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말씀으로 여겨져 오늘 『신앙산책』에 올려드리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묻곤 합니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평온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까?” 사실은 저도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가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흔 살이 되고 여든이 지나고 이제 ‘100년’이라는 세월의 고개를 넘어서 보니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실들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마치 긴 여행과 같아서 청년시절에는 짐 보따리를 채우면서 올라가지만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그 짐을 하나 둘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평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일흔’이라는 나이는 인생에 아주 중요한 분기점(分岐點)입니다. 공자께서는 일흔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하여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 하셨지요.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가지 말아야 할 곳’과 ‘가야 할 곳’을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경지(境地)입니다.
어떤 이들은 “나이 일흔에 못 갈 곳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켜본 수많은 삶 속에서 노년의 불행은 대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은 단순히 ‘공간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을 갉아먹고 평생 쌓아온 복을 깎아 먹으며 끝내 원치 않는 짐을 짊어지게 만드는 그런 “어두운 에너지가 깃든 곳”을 말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쇠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영혼이 투명해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젊었을 때는 흙탕물 속에서도 헤엄칠 힘이 있지만 나이 ‘일흔’의 영혼은 작은 얼룩에도 쉽게 오염되기 마련입니다. 내가 무심코 찾아간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 한마디가 결국 나의 노년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제 성장(成長)이 아니라 성숙(成熟)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해야 하며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고, 심심하니까 가고, 예전부터 갔으니까 가는, 그런 관성적(慣性的)인 삶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며 하늘이 허락한 남은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들려주고자 하는 저의 ‘100년’ 세월이 담긴 고백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남은 생을 지켜줄 작은 등불이 되길 바라는 저의 진심입니다. 부디 귀로 듣지 마시고 마음으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흔’의 나이에 왜 그 “세 곳”을 멀리해야 하는지 준엄한 생의 이치를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나이 ‘일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흔히 ‘외로움’을 가장 큰 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이 많은 곳,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지요. 하지만 제가 ‘100년’을 살아오며 느낀 점은 노년의 가장 깊은 고독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화려함 속에 있을 때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옛 동창들의 화려한 칠순 잔치 혹은 자식 자랑이 난무(亂舞)하는 동호회 모임 같은 곳을 말합니다. 우리가 ‘일흔’이라는 나이에 첫 번째로 피해야 할 곳은 바로 《허영(虛榮)이 가득한 모임》입니다.
※김형석 교수께서 주시는 말씀을 다음 주에 이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