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이성휘 목사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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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순교의 역사

기독교 신앙을 말살하는 데 있어서 진행한 교묘한 과정이었다. 이렇게 공산당은 기독교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을 체포하고 죽였다. 예배당을 파괴하고 십자가를 없애므로 한국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 거리에서 예배당의 십자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최후의 날은 7월 5일이었다. 북한에서는 평양 탈환 직전 우익 인사 대학살이 있었는데 이성휘 목사가 이때 순교했다. 학문과 교역과 삶의 일치에 힘썼던 이성휘 목사는 끝내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가 공산정권에 의해서 죽음을 맞았다. 

공산당 어용 신학교였던 기독교신학교는 한국전쟁과 더불어 완전히 와해되었다. 그래도 1950년 7월 5일 첫 졸업생을 내고 문을 닫았는데 그때 졸업생이 노재남, 안병무, 장승찬, 최용문 등이었다.

이같이 이성휘 목사는 공산 치하에서 목회자이면서 교수로서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장의 중책을 맡아 목숨 걸고 봉직하다가 공산당에 반동분자로 몰려 정치 보위부에 연행되었고, 유엔군 평양 탈환 직전에 우익 인사 대학살사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1957년, 이성휘 목사의 모교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교 동창회에서 강당에 ‘이성휘 박사 순교기념패’를 안치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터가 되었다”라고 한 초대교회 유명한 교부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의 명언은 순교자 이성휘 목사의 후대들을 통해서 계속 메아리치고 있다.

<국어대사전> 이희승 편에 보면, 순교는 ‘모든 억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의하면 1) 순교는 종교적 신앙의 행위이며, 2) 억압과 박해하는 상황이 전제되고, 3) 순교는 바로 목숨을 바치는 일, 즉 죽음과 결부된다. 한국교회에서 이런 순교자들이 과거에 있었고 현재도 북한에서 또는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위시한 대부분의 초대 기독교 지도자들은 박해의 손에 의해서 죽은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순교자란 바로 목숨을 바친 사람으로 기독교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그 맨 앞자리에 선 사람들이 바로 순교자들이라고 했다.

문학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도 아주 특별한 글을 당시 <삼천리>라는 정기 간행물에 실었다. ‘나는 순교자를 좋아합니다. 이해관계를 도외시하고 오직 진리와 의리를 위해 생명까지 희생하는 순교자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순교자들을 존경합니다. 그 역사를 잘 알 수 없음이 한이지만 조선인이 수만의 순교자를 냈다는 것은 불후의 자랑으로 알며, 내 혈관에도 이러한 순교자의 피가 흐르거니 하면 마음이 든든하고 긍지를 느낍니다’라고 썼다.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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