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내려놓거나 버리거나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비워야 산다. 비움은 순환이고 생명 유지의 원리다. 2015년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21초의 법칙’이 있다. 코끼리든 생쥐든 대변을 보는 시간은 똑같이 약 21초다. 몸집의 크기가 달라도 비움의 시간은 비슷하다. 창조주가 설계한 공평한 구조이다.
사실 배설물이 더러운 폐기물만은 아니다. 옛 농촌에서는 똥과 오줌은 땅을 살리는 최고의 거름이었다. 현대 과학에서도 장내 유익균을 담은 보물창고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걸 이용해 노벨상을 받은 똥 박사가 수십 명 이른다. 우리 몸을 정화하고 남은 이 ‘유익한 흔적’이 결국 생명의 순환을 돕는 셈이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발전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파리가 들끓던 구식 변소나 푸세식은 사라지고,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호텔급 공간이 되었다. 그 깨끗한 공간엔 특이한 문구들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일보 전진 앞으로’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깨끗하게 사용한다면, 나도 여기서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
배설은 즐거움이다. 그러나 제때 버리지 못하면 고통으로 바뀐다. 제때 비워내지 못할 때 겪는 처절한 고통이다. 꽉 막힌 도로 위, 화장실도 없는 차 안에서 방광이 터질 듯 팽창해본 적이 있는가? 방광이 팽만해 하복부가 조이고 참을 수 없는 그런 ‘방광의 압박’을 겪어봤는가. 도저히 참다못해 속옷에 실례를 하기도 하고 급한 대로 차 안의 빈 물병을 붙들고 방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뿔싸, 물병의 용량은 내 방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비움의 때를 놓친 이러한 고통은 겪어본 자만이 안다. ‘제때, 제대로’ 비워내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를 생각해본다.
40여 년 전 1987년, 중국 방문에서 겪은 화장실 경험이다. 화장실 풍경들이 가관이다. 그중 어떤 곳은 입장료를 받는데 여자 화장실이 남자보다 무려 2.5배나 더 비싼 게 아닌가! 왜냐고 따져 물었다. 그들의 대답인즉 화장실이 남자는 ‘합방’인데, 여자는 ‘독방’이란다.
그리고 남자는 ‘입석’인데, 여자는 ‘좌석’이란다. 합방과 독방 그리고 입석과 좌석 차이. 조금은 수긍이 되었다. 유럽은 화장실에 가려면 돈을 내야만 한다. 한국은 지금까지 무료였다. 돈 안 들이고 배설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인생도 배설과 같다. 변비가 심하면 의사가 파내야 하듯, 우리 삶에도 덕지덕지 붙은 오물들이 있다. 욕심, 시기, 집착들. 이것들을 움켜쥐고 있으면 심령이 썩고 삶이 힘들어진다. 독소가 온몸에 퍼져 병이 드는 법이다. 내려놓으라. 버려야 비로소 자유롭다. 잘 먹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못 버리는 병’이다. 오늘 나의 장을 시원하게 비우듯, 마음의 찌꺼기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버리자. 비워진 그 빈자리에만 새로운 생명 창조의 기운이 차오른다.
두 손으로 움켜쥐지만 결국 언젠가 빈손으로 간다. 그게 인생이다. 낄끼빠빠, 때론 낄 자리 아닌데 끼거나 때론 ‘No’할 자리에서 ‘No’를 못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박수받을 때 떠나고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미 모든 것을 비워낸 진정한 자유인들이다.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