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종, ‘제주 4•3 사건’ 속 순교와 신앙의 길
서귀포 대정골 성에는 ‘추사관’(秋史館)이라는 역사적 장소가 있다. 이곳은 유배 생활을 하며 그 유명한 추사체를 완성했다는 김정희 선생의 인생과 애환이 녹아 있는 곳이다. 여기서 불과 담장 하나 건너에 제주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른 공간이 있다. 바로 70여 년 전 제주 땅을 온통 뒤흔든 ‘4·3 사건’ 당시, 양떼를 돌보기 위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 사역하다가 숨진 이도종 목사를 추모하는 작은 공원이 제주 대정장로교회 앞마당에 마련되어 있다.
이도종(李道宗) 목사는 4·3 사건이 발발한 1948년 6월, 순회예배를 위해 가던 중 무장대에게 체포되어 심하게 구타를 당한 후 생매장되어 56세에 순교했다. 이후 그의 순교 사실을 알게 된 대정교회 신도들이 그의 시신을 파내서 장례를 치렀고, 산방산에서 가져온 돌을 정성껏 다듬어 순교 기념비를 세웠다.
기독교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순교의 길’은 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 2코스로, 제주 출신 1호 목사이자 첫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의 헌신적인 삶과 희생을 기리고 있다. 그곳은 지금 제주 서부 지역 산간을 종단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길로 부활해 비극적인 역사를 보듬고 있는 것이다.
이도종은 1892년 9월 13일 북제주군 애월읍 금성리 706번지에서 부농인 이덕연(李德連)과 박열선(朴烈先)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읽고 선비 행세를 했다.
이도종 목사의 아버지 이덕연은 일제가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려고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인해 제주도에 유배 온 남강 이승훈 장로를 통해 복음을 받았고, 금성교회가 제주 최초의 신앙공동체로 출발할 당시 함께한 8명 중 한 명이었다.
이덕연은 조봉호와 함께 1907년 3월 10일 금성교회를 세웠다. 이덕연은 훗날 제주 최초의 장로가 되었고, 첫째 아들 이도종을 숭실중학교로, 둘째 아들 이이종을 오산학교로, 딸 이자민은 수피아여학교로 모두 기독교 학교에 진학시키며 철저한 신앙인이 되었다.
청년 이도종은 그의 신실함과 사역자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한 제주 선교사 이기풍 목사의 소개로 1910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유학 간 후 1922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한편, 이도종은 조봉호 전도사와 함께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조선의 독립을 위해 비밀결사인 독립회생회 제주지부를 결성해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을 주도했다가 6개월간 옥고를 겪었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다. 이도종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초를 겪은 독립운동가요, 독립유공자인 것이다. 조봉호는 1919년 독립회생회 사건으로 옥중 순국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이도종은 전도인 자격으로 협재교회를 개척했고, 1922년 평양신학교 재학 중에는 삼양교회 전도사로 파송되어 고향에서 시무했다.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