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축시대 세상 읽기] 태즈메이니아의 비극 ‘블랙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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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전쟁은 영국 함대가 호주에 도착한 1788년부터 1930년대까지 약 140년 동안 일어나서 영국군, 백인 정착민과 경찰에 의한 원주민 집단 학살을 야기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태즈메이니아에서 일어난 블랙 워 (Black War)였다. 당시 ‘반 디멘스 랜드’라고 불리던 태즈메이니아에서 영국 정착민들이 원주민 팔라워 (Palawa 혹은 Pakana) 족의 터전을 빼앗기 위해서 수천 명을 학살했다. 블랙 워는 1820년대부터 시작해서 1832년까지 벌어졌다. 호주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참혹한 전쟁이었다.

전쟁은 영토 분쟁에서 시작했다. 백인 정착민들은 테라 눌리우스 원칙에 따라서 어떤 토지도 주인이 없다고 간주했다. 이들이 양을 기르기 위해 원주민 사냥터를 점령하고 담장을 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정착민들은 원주민의 주식인 캥거루를 남획하고, 원주민 여성들을 폭행하거나 납치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원주민들은 정착민 농장을 습격했다. 이들은 지형을 활용해서 교묘하게 습격하고 사라지는 게릴라 전술을 구사했다.

원주민의 공격에 두려움을 느낀 백인 정착민들은 보복 학살로 대응했다. 1828년, 태즈메이니아의 조지 아서 (George Arthur) 총독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착민들에게 원주민들을 사살하거나 생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1830년에는 10월과 11월 6주 동안 군사 작전 ‘블랙 라인 (Black line)’을 전개했다. 섬의 동과 서를 잇는 300km에 달하는 라인을 형성하고 북쪽에서 남쪽까지 훑으면서 원주민을 압박했다. 작전에는 섬 내 백인 남성 10%에 달하는 2천여 명의 군인, 경찰, 민간인, 죄수를 동원했다. 작전 비용 3만 파운드는 당시 식민지 연간 예산의 절반을 넘는 막대한 자금이었다. 호주 역사상 최대의 원주민 소탕 작전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을 태즈먼 반도로 몰아넣어 격리하려던 작전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지형에 익숙한 원주민들은 감시망을 피해서 빠져나갔다. 아이 1명을 포함한 2명을 생포하고 2명을 사살했을 뿐이다. 군사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식민 정부의 대규모 무력시위는 원주민들에게 큰 심리적 압박과 공포를 불러왔다.

1835년에 영국 측 협상가 조지 오거스터스 로빈슨이 원주민을 회유했다. 건축업자 로빈슨은 비무장한 상태로 원주민 거주지로 가서 신뢰를 얻은 뒤 협상책을 제시했다. 귀환을 약속하고 플린더스 섬 (Flinders Island)으로 이주하면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고 보호하기로 했다.

  200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플린더스 섬 위발레나 수용소로 이주했지만, 열악한 환경과 전염병으로 다수가 사망했다. 1843년에는 불과 50명으로 줄어들었다. 1847년에 추가로 48명의 생존자가 플린더스 섬의 오이스터 코브 수용소로 이주했다. 이중에 아동을 분리해서 호바트의 고아원 학교로 강제 수용한 뒤, 1855년에 남은 생존자 전원을 오이스터 코브 수용소로 옮겼다. 드디어 1876년에 수용소의 모든 사람이 사망했다.

수천 명에 달하던 팔라워 족은 백인 혼혈을 포함해도 불과 수백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4만 년 넘게 이어온 팔라워 족의 언어, 의례, 전통 지식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최근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진실 말하기(Truth-Telling)’ 운동을 통해 인종 청소 비극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호주 사회는 이 시기에 벌어진 일이 ‘개척’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규명하고, 집단 학살과 제노사이드 비극을 반성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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