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故鄕)’은 사람이 태어나 살던 곳을 말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회변동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떠나와서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지금 고향을 지키고 사는 사람의 수, 즉 비율이 얼마나 될까? 농업인구가 전체의 5퍼센트 미만이라 하고 그 중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을 터이니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일하며 살다가 그곳에 뼈를 묻는 행복을 누리는 수는 고작 100만 명이 될까 말까 하리라는 게 나의 어설픈 계산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다수는 수만 명의 탈북민을 포함해, 고향을 그리며 살고 있다고 하겠다.
젊어서 직업에 얽매여 사는 동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간혹 머리를 스치는 낭만적 감정이다가 나이가 들고 은퇴라도 하면 사람마다 차츰 짙어지는 향수(鄕愁)를 느끼게 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고향방문 길에 오른다.
나도 그 향수병의 환자가 되어 이를 치유하고자 지난 주 조카 두사람을 대동하고 1박 2일 일정으로 고향 전남 강진을 다녀왔다. 인접한 해남군에 위치한 선산에 성묘를 한다는 목적을 달았는데 조상님들께 죄송하지만 사실 성묘라는 의식보다는 봄철에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돌아보고 항상 입맛을 당기는 고향음식을 즐겨보는 것이 여행의 동기임을 숨길 수 없겠다.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해 잘 갖춰진 고속도로망 덕분에 정오 전에 400킬로 떨어진 목적지에 도착하고, 산위로부터 내려오며 증조부, 조부, 백부, 선친의 각 묘소에 예를 표하고 나면 남은 시간을 일반 관광 여행자 같은 모양으로 사용하게 된다.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서울에서부터 골라 놓은 읍내 유명 식당으로, 오랜만에 고향의 맛에 푹 젖어 때늦은 점심을 여유롭게 들면서 일하시는 분들과 고향의 사투리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다음에는 탑골 마을길을 걸어 올라 옛날 친족의 종갓집이었고 지금은 군(郡)문화재로 되어있는 영랑생가와 이웃한 『시문학파 기념관』에 들리고 거기서 종형 김윤식과 그의 시문학파 동인 박용철, 정지용, 신석초, 김현구의 시들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리고는 이른 저녁을 들고 예약해 놓은 다산초당 아랫마을의 다향소축(茶香小築) 사랑채 드넓은 온돌방에 피곤한 몸을 눕힌다.
다음날 아침 300미터 산길을 올라 다산초당에 당도하고 천일암 정자에서 남해바다를 조망하며 고향의 시원한 공기를 한 가슴 가득히 들이마신다.
내려와 차를 타고 인근의 백련사(白蓮寺)로 향한다. 전국에서 제일가는 동백 군락지라 자랑하는 곳인데 뜻밖에 금년은 해걸이로 많지 않은 꽃들이 반짝이는 잎사귀들 속에 숨어있다. 섭섭한 마음을 누르며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전도서 구절을 되새긴다.
일년에 한 차례라도 성묘를 구실로 고향의 흙을 밟아보는 ‘특권’이 허락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내가 차츰차츰 다가가고 있는 영원한 영혼의 고향을 그려본다. 어쩐지 그곳은 방금 떠나온, 내 육신의 뿌리가 꽂힌 남해 바닷가 이 땅과 많이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