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보다 생명”… 생명 살리는 노동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전국 69개 노회와 9천446개 교회, 모든 성도 위에, 그리고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교단은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산업화의 격랑 속에 소외된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일터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동주일’을 제정하였습니다. 지난 67년 동안 국가 정책의 변화에 따라 명칭이 ‘근로자의 날’로 사용되어 왔음에도, 우리 교단은 매해 4월 마지막 주일을 성서적 노동관에 기초한 ‘노동주일’로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시대의 아픔에 응답해 온 우리 교단의 소중한 영적 유산이며, 오늘에도 포기할 수 없는 선교적 사명입니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대 앞에 서 있습니다. 자본은 기술혁신을 통한 무한 성장을 말하고, 국가는 기술 패권 경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도약의 이면에는 기술적 합리주의에 매몰된 인간 소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이 겪게 될 고용불안과 노동의 가치 하락에 대한 성찰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강화되는 ‘각자도생’의 논리는 복음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생명문명 생명목회 순례 10년(2022-2032)을 이행하고 있는 우리는 사람, 특별히 사회적 약자를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기술은 결코 참된 번영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천명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의 생명을 해하려고 서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16). 이 말씀은 자본과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려는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음성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윤보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0:10)를 본받아, ‘각자도생’의 생존을 넘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의 존엄한 가치를 세상에 힘있게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느덧 노동을 기피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풍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노동’의 신학적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번 노동주일을 맞아 전국 교회와 성도님들께서 다음의 세 가지 제목으로 함께 기도해 주시고 행동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첫째,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합시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보장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둘째, 안전이 우선되는 일터를 세워 갑시다. 속도보다 안전을, 이윤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산업 현장이 되도록 예언자적 감시자이자 따뜻한 위로자의 역할을 감당합시다.
셋째, 희년의 질서를 일터에 심어 갑시다. 노동과 안식의 거룩한 균형을 회복하고,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적 가치를 되살려 일터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갑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에서 땀 흘리는 모든 이들과, 실직의 아픔 속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들, 그리고 산업현장의 불의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깊은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노동의 신성함이 회복되고, 일터마다 복음의 꽃이 피어나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님들이 이 거룩한 소명 앞에 늘 깨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6년 4월 2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정훈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