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터키(튀르키예)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순식간에 앗아갔습니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은 생존자를 찾기 위해 무너진 집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한 젊은 여성의 집터 근처에서 흙더미 속에 웅크린 사람의 형체를 발견했습니다. 그 모습은 조금 특이했습니다. 마치 신에게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자세였습니다. 여성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목과 허리는 무너진 잔해의 무게에 부러져 있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잠시 그녀의 생존 가능성을 점검해 보았지만, 더 이상 숨도, 체온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이동하려 했습니다. 그때, 현장 지휘를 맡은 팀장이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의 눈에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스쳤던 것입니다. 그는 다시 돌아와 그 여성이 품고 있던 팔 아래쪽 공간을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아기가 있다!”
구조대원들이 달려와 조심스레 흙더미를 걷어내자, 꽃무늬 담요에 싸인 갓난아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는 생후 3개월 된 아기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집이 무너져 내리는 그 짧은 순간, 온몸으로 아이를 감싸 안고 웅크린 채 ‘방패(防牌)’처럼 자신의 몸을 내어준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놀랍게도 잠든 듯 평온한 얼굴이었습니다.
의료팀이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담요를 풀자, 그 안에서 휴대폰이 나왔습니다. 그 휴대폰의 화면에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가야, 만약 네가 살아남는다면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꼭 기억해야 한단다.” 그 문장을 본 구조대원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들은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사랑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아이를 살렸고, 그 사랑이 세상을 울렸습니다. 삶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그녀는 절망 대신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죽음조차 뛰어 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적(奇蹟)’을 하늘에서 오는 초자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자신보다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는 순간, 그 마음이 바로 기적의 시작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생의 결정체(結晶體)’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포옹’은 세상의 어떤 말보다 위대한 기도였고, 그녀의 문자 한 줄은 그 어떤 시(詩)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시’였습니다.
‘포옹(抱擁)’은 단순히 사람을 끌어안는 행위를 넘어, 상대방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아량(雅量)’과 ‘배려(配慮)’를 뜻합니다. 과학적으로 포옹은 정서적 안정과 치유를 주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포옹을 많이 할수록 ‘옥시토신(사랑과 행복의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라네요. 아이들은 인형이나 베개만 껴안아도 정서적 안정과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지요.
‘포옹’이 신앙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곧 ‘하나님의 포옹’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신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먼저 우리를 안아주시고 사랑을 확증(確證)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죄와 허물을 덮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품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은 곧 서로를 향해 팔을 벌려 품으라는 권면이 아닐까 합니다. ‘포옹’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서로의 약점(弱點)을 끌어안으며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