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선교-소명의 사이렌] 은혜와 진리 되시는 헤세드와 에메트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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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 끝에 걸린 노을이 유난히 붉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구멍 난 검정 고무신 사이로 흙먼지가 들어와도 산비탈을 내달리며 바라본 세상은 그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던 깊은 산골이라 초등학교 때 겨우 호롱불에서 발전해 백열등 전구 하나가 안방에 비추어졌다. 그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던 천출 소년에게 ‘세상의 중심’이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작은 소년의 이름을 기억하셨다. 광야에서 다윗을 찾아내셨듯, 이름 없는 산골 소년의 손을 잡고 세상의 중심으로 이끄셨다. 굽이굽이 험한 길을 지날 때마다 그분은 때로는 구름 기둥으로, 때로는 불 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모든 발자국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어느덧 세상의 중심부에 서서 바쁜 일상을 살아내다 보니, 영혼의 온도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의 그 뜨거웠던 눈물은 메말라 버렸고, 이웃을 향해 열려 있던 사랑스런 마음의 문에는 빗장이 걸렸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열매에 취해, 정작 그 열매를 맺게 하신 농부의 수고를 잊어버린 것이다.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교만이 고개를 들면서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은 소음처럼 느껴졌고, 주님의 세밀한 음성은 분주한 일정 속에 묻혀버렸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는 신명기 말씀(8:11-20) 의 경고는 마치 오늘의 나를 향한 날카로운 화살처럼 가슴에 박힌다. 풍요로움이 신앙의 독이 되고, 분주함이 사랑의 걸림돌이 되어 깊은 탄식을 내뱉는다.

이제 나는 다시금 무릎을 꿇고 주님의 ‘헤세드(Chesed)’를 구한다. 조건 없이 베푸시는 그 인자하심과 변함없는 사랑이 내 메마른 심령에 다시 흘러야 함을 절감한다. “인자와 진리를 저버리지 말고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며 너의 마음 속 깊이 새겨 두어라”(잠 3:3) 인자없는 진리는 냉혹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진리가 결여된 인자는 감상적인 동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자는 ‘헤세드’로 언약에 성실한 사랑을 뜻하고, 진리는 ‘에메트’로 하나님의 영원한 교훈을 뜻한다. 하나님 백성들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와 장신구는 헤세드와 에메트이다.

산골 소년 시절 가졌던 그 순전한 마음으로 돌아가,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공감을 회복하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께서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차츰 인도하신 이유는 화려한 조명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헤세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라는 부르심이었음을 잊고 살았다. 하나님의 인애는 높은 곳에 고여 있지 않고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심령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안의 자아를 비워내고 그 자리에 주님의 따뜻한 긍휼을 채우는 과정이 절실함을 느낀다. 

동시에 나는 ‘에메트(Emeth)’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흔들리지 않는 진리, 변치 않는 성실함으로 주님 앞에 서고자 한다. 세상의 기준과 타협하며 적당히 안주했던 비겁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엄중한 거울 앞에 나를 비춰본다. 진정한 에메트는 입술의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작은 행실에서 드러나는 신실함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곁의 형제를 외면하는 거짓된 경건을 걷어내고, 진리의 빛 아래서 정직하게 나를 직면한다.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가 참된 것이라면, 이제 나의 삶 또한 이웃에게 참된 위로와 진실한 손길로 닿아야 한다. 

  기억의 회복은 사명의 시작이다. 나를 산골에서 이끄신 분을 기억할 때, 현재의 위치는 내 자랑이 아닌 거룩한 부담감이 된다. 시선의 회복은 사랑의 실천이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 낮고 소외된 곳으로 고개를 돌릴 때 비로소 식어버린 가슴에 다시 사랑의 불이 붙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리의 간구는 생명의 길이다. 내 생각과 판단이 아닌 변치 않는 하나님의 에메트만이 내 삶의 유일한 척도가 되어야 한다.

헤세드의 사랑과 에메트의 진리가 만나는 그 지점에 십자가가 있고, 그 길 위에 진정한 제자의 삶이 있다. 산골 소년의 투박하지만 진실했던 기도를 회복하고 싶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는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주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드리는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는 고백이 내 삶의 문장마다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 헤세드와 에메트의 길 위에서 다시금 이웃을 품고 세상을 치유하는 참된 성도로 거듭나기를, 낮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도 조용히 홀로 걷는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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