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가니니의 유해가 본인의 유언에 따라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데는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한 세기 만에 인간을 박물관에 박제한 제국주의의 잔혹한 범죄도 멈추었다. 원주민 사회의 끈질긴 반환 투쟁 끝에 1976년 4월에 유해를 화장해서 고향 바다에 산골했다. 2002년에 영국 의사협회가 불법 소장한 그녀의 모발과 피부 조직까지 반환해서 안장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은 약 4만 년 전에 이주했다. 당시 태즈메이니아섬은 바시안 평원을 통해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약 1만2천년 전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120미터 상승해 본토와 끊어졌다. 유럽인이 들어올 때까지 500세대 동안 원주민은 독특한 언어, 문화, 생활 기술을 발전시켰다. 본토의 포식자 딩고가 들어오지 못해서 태즈메이니아 데블이나 틸라신 같은 고유 유대류들이 현대까지 살아남았다. 원주민들은 여러 언어를 사용했지만, 기록이 많지 않아 불분명한 상태다. 현대에 원주민 언어 팔라와어를 재구성했다. 이 언어는 원주민을 팔라와(Palawa)라 부른다.
1803년부터 태즈메이니아섬을 식민화하면서 원주민과 충돌이 시작했다. 호주 역사학자 린달 라이언(Lyndall Ryan)은 당시 9개 원주민 국가 아래 약 70~100개의 씨족이 분포해서 약 7천 명이 살고 있었다고 추산했다. 불과 30년 만에 순혈 원주민은 400명으로 감소했다. 대부분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으로 사망했으나, 원주민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도 인구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트루가니니가 죽은 뒤 호주 정부는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은 멸절했다’는 허구의 서사를 유포했다. 그러나 혼혈 후손들은 1970년대부터 정체성을 밝히며 명예회복 운동을 전개했다. 후손들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센터(TAC)를 조직해서 자신들이 ‘살아있는 문화 공동체’임을 증명했다. 1997년 호주 인권위원회는 역사적 보고서인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주오’(Bringing Them Home)를 통해 백인 동화 정책인 원주민 아동 강제 격리 제도와 ‘도둑맞은 세대’의 참상을 세상에 드러냈다.
태즈메이니아주는 다른 주보다 앞서서 과거사 청산을 시작했다. 보상을 법제화하고, 물질적·법적 보상과 토지 반환을 시작했다. 1995년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토지법을 통과시킨 뒤, 2005년에 과거 원주민 격리 수용소였던 케이프 바렌 섬 대부분을 비롯한 역사적 영토들을 원주민 공동체에 반환했다. 반환 토지는 주 정부로부터 독립된 법적 주체인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토지위원회(ALCT)가 영구 신탁 형태로 소유 관리한다.
2006년 호주 최초로 도둑맞은 세대 아동 보상법을 제정해서, 강제 격리 피해 원주민과 그 자녀들에게 총 500만 호주 달러 규모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주 의회는 주 헌법을 개정해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을 ‘땅의 원주인이자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주체’로 공식 소명하고 역사적 죄과를 명시했다.
원주민 자치 법인 TAC는 태즈메이니아주 원주민의 보건, 복지, 교육, 법률 서비스를 총괄하는 법적 주체이다. 현재 언어 복원, 유해 및 문화재 반환, 토지 주권 및 생태계 관리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수만 년 이어져 온 전통적인 토지 관리 방식을 복원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태즈메이니아의 자연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태즈메이니아 주 의회와 원주민 공동체는 이 일련의 과정을 인간의 오만이 저지른 죄과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신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늦게나마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고, 짓밟힌 하나님의 형상을 복원하는 눈물의 참회록이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