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단상] 사죄는 이미 하나님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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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아주 깔끔하고 키가 훤칠하고 핸섬한 학생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교목실을 찾았다. 학생의 표정은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것 같이 굳어 있었고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무거운 표정이다. 교목실에 목사를 찾아온 것을 보면 분명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온 것 같았다. 나는 내담자가 오면 내가 먼저 말을 하거나 묻지를 않는다. 잠시 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첫해에 입시에 실패를 했는데, 재수를 해서 연세대학 법정대학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할 뿐만 아니라 교회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서 누구나 쉽게 들어가기 힘든 명문 대학을 입학했으니 떳떳한 자세로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내용인데,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내 얼굴을 정면으로 들지 못하고 이야기를 했다. 이유인즉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자기가 경신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다른 과목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매주 예배시간이나 성경시간만 되면 목사님의 강의나 설교 말씀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하면 목사님을 골탕 먹일까’, ‘트집 잡을 만한 성경구절이 없을까’ 성경책만 계속 뒤적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목사님을 한 번도 골탕 먹이지 못했고 시간만 낭비했으니 결국 목사님께 죄를 지은 것이고 그 죄를 오늘 사죄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서 그가 왜 시종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다. 나는 마음으로 ‘이 학생이 아주 순수한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그 학생에게 곧장 말했다. “사죄는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예수님이 너를 용서하신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에도 열심히 출석하고, 더군다나 교회학교 교사까지 한다니 그 자체가 이미 회개하고 용서받은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격려했다. 비로소 학생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나를 정면으로 마주봤다. 참으로 진실하고 진지하고 솔직한 마음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때 그 학생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나에게 있어서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듣던 안 듣던 복음의 씨는 뿌려야 함을 새삼 확인했다. 비록 학교에서 매주 드리는 정규예배 시간에, 그리고 성경 공부하는 동안에 건성으로 듣고, 심지어 마음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더라도 말이다. 

또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당장 신자가 되겠다고 신앙고백이나 교회에 출석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성경교육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심겨지고 그것이 학생들의 잠재의식 속에 새겨지면 그들의 삶의 인생길에 좋은 일이든 언짢은 일이든 언젠가 어떤 인생의 극적인 계기가 발생할 때에 그 복음의 씨가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서 나는 평생 교목을 했나보다. 복음의 씨앗이야말로 생명력이 있고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김종희 목사

• 경신 중ㆍ고 전 교목실장 

• 전 서울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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