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반성하는 삶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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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예전에 사장이 그 사원을 눈여겨보지 않은 것은 그의 능력이 부족한 데다 뭔가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그는 자신을 반성할 기회를 가졌고, 자기가 모자란 것이 무엇이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실패의 인생을 살면서도 왜 실패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지 않고 혼자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 원인을 전가하고 이래저래 핑계만 둘러대기 바빴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 자기를 반성하게 되었고 실패의 원인을 발견했고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반성을 요구한다. 성경은 회개를 촉구한다. 반성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자기를 바라보면 장점과 긍정적인 면도 보이지만 흠과 결점도 크게 보인다. 반성을 통해서 자기 잘못과 부정적인 부분을 고치고 이상과 목표를 향해 전진할 힘을 얻을 수도 있으나, 자기의 흠과 결점, 실수 등에 빠져 잠시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 더구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자기를 보고 검증해도 자기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고자 열망하는 사람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곳에 함께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 갈 길을 가셔서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고 스올의 자리에 내려갈지라도 거기에 계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에도 하나님은 찾아오신다. 우리 주님은 흑암이 우리를 덮고 캄캄한 밤이 우리를 삼킬지라도 거기에서도 우리에게 빛을 주는 분이시다. 우리가 죽음의 자리에 앉을지라도, 고난의 자리에 앉을지라도, 갈 바를 알지 못하여 헤맬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라도 어떤 불행과 시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심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때라도 회개하고 반성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임재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요, 임재하신 하나님의 빛과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성자 브랭글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침체와 우울이 나에게 왔다. 하나님은 안 계신 것 같았다. 기도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기도와 정신과 힘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라고 고백하며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우울증을 없애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으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 그는 ‘메타노이아’, 즉 회개를 선택하였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비록 찬양과 감사의 마음이 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기로 했다.” 브랭글은 죽고 싶은 고난의 시간에서도 자기나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이것이 회개, 곧 반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반성해야 한다. 나의 그림자는 내가 어딜 가나 나를 따라다닌다. 나를 지켜보는 그림자는 내가 홀로 있어 내 자신을 속일 때에도, 나의 습관적 행동 때문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에도 내 모습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따라다닌다. 적어도 우리는 나의 그림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이런 떳떳한 삶은 반성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 103:1)고 명한다. 브랭글은 이제까지 우울증의 아픔만을 보면서 우울증에서 해방되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회개 없는 기도는 우울증을 극복하기엔 여전히 부족하였고, 그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러다가 그는 우울증을 잊고 회개에 집중하였다. 오롯이 회개하는 가운데 그의 우울증도 치료되었다. 그는 자기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서 감사하며 찬양했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그를 사람들은 성자라고 칭하였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돌아서는 회개, 곧 ‘메타노이아’의 삶을 사는 자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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