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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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에서 상주까지 (49) 

배위량은 가지고 온 책을 상주에서도 팔았다. 이런 일은 배위량에게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는 순회 전도여행을 나와서 시간이 있으면 책을 번역했고, 또 시간이 있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가지고 온 신앙서적을 팔았다. 이렇게 팔았던 책들은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아울러 이 책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서양문화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서점도 많고 책도 많다. 필자가 어린 시절만 해도 책이 귀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적었다. 시장에서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 책을 사오면 동네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어느 집 마당에 멍석을 깔아 두고 둘러앉으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책을 읽어 주게 되고, 그것을 듣고 동에 사람들 모두 함께 즐거워하기도 하고 울고 웃기도 했다. 

배위량이 팔았던 책은 그냥 책이 아니라, 신앙서적이었기에 그 당시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손에 넘어가서 읽혀지면 그 글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서양의 학문과 문화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었다. 

지금은 신문, 책,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핸드폰 등등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하여 새로운 학문과 문화를 접할 수 있지만, 이전 시대에는 책이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역사에서 인류 역사를 발전시키는 매개가 된 것은 문자만큼 영향을 끼친 것은 없을 것이다. 문자가 없었던 고대 시대에 살았던 인류가 그림이나, 상형문자로 의사를 표시해 둔 유물들이 발견되면 그것을 오랜 연구 기간을 두고 이해하고 해독한다. 고대인이나, 현대인 모두 문자 속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통하여 사상과 학문이 전수되었고 과학적인 방법이 문자 속에 전수됨으로 학문과 사상이 전승되고 과학의 발전을 문자 속에 담아 더욱 진전된 원리를 찾아 왔다. 

만약 문자가 없었다면 학문과 사상의 전승이 오늘처럼 이렇게 왕성하게 전승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자가 있기에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문자 속에 담아 역사 속에 남긴다. 문자가 모여지면 책이 된다. 책과 관련된 많은 글이 배위량의 일기에 나타난다. 1893년 5월 1일 월요일 저녁에 예천 용궁(Ryonggyoon)에서 상주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배위량의 일기에 보면 책을 팔았다는 말만 나오지 않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나온다. 이러한 점은 그의 주목적이 책을 파는 것이 아닌 순회전도 여행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책과 관련하여 배위량은 이 날도 짧게 언급한다. 

가능한 많은 양의 책들이 배포되었다. 

“가능한 많은 양의 책들이 배포되었다.”는 말은 배위량이 책을 그냥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는 말이 아니라 책을 팔았다는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책을 많이 팔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지역에서 쓴 일기에는 “책을 팔았다”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파는 것과 공짜로 나누어 주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배위량이 그 당시 거주했던 부산이었다면 책을 무료로 나누어 줄 수 있고 그 일이 가능하고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남지역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상주에서 책을 공짜로 나누어 준 것으로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른다. 그것은 먼저 다른 지역에서 한 행동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책을 팔았는데, 상주에서만은 책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고 형편상으로도 맞지 않다. 

그것은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운송업이 발전되지 않았고 책도 귀한 시절이기에 그렇다. 물론 배위량이 동래에서 대구를 향해 순회전도 여행을 출발할 때 말 두 필과 마부 두 명을 고용하여 함께 전도여행을 출발했다. 그 말 두 필에 책만 잔뜩 실으면 많이 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말 위에는 책뿐만 아니라, 한 달간 같이 여행하는 5명의 여행 물품을 실어야 했다. 가끔씩 배위량이 말을 타기도 했을 것이므로 짐을 말 위에 많이 싣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책을 가지고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책을 공짜로 나누어 줄 생각이었다면 여행 출발지인 동래에서 다 나누어 주고 홀가분한 행장으로 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조선에서는 통상의 책을 한지로 만들었다. 배위량이 만든 책은 그가 직접 번역한 책일 수도 있지만, 이미 다른 번역가의 이름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책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지금의 책을 만드는 종이로 된 책으로 당시에는 아직 그런 책을 만드는 기술이 조선에는 없었다. 당시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일본에서 책을 출판하여 가져 왔고 그 책들을 당시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전도용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책 자체도 귀했고 한정되었다. 그렇기에 책 한 권 한 권이 귀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가져온 귀한 책을 그냥 공짜로 나누어 주면 물량에 한정이 있어 나누어 주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양의 책들이 배포되었다.”는 말은 많은 책을 팔았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배위량이 책을 판 것은 전도를 가장한 사업상 이득을 남기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당시의 사정에 가장 정당한 방법을 통하여 문서 선교를 하는 수단이었다. 무료로 얻은 책과 정당한 가치를 주고 얻은 책은 그 자체의 가치가 다르다. 책을 판다는 것은 그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책 속에 담겨 있는 정당한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배위량이 팔았던 책이 어떤 책이든 간에 그 책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가 분명히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자는 단순히 문자의 역할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문자가 모여져 글이 되고 문장이 되고 책이 될 때는 그 책 속에 사상이 담기게 되고 과학과 문화와 역사가 담기게 된다. 신앙의 책은 그 속에 신앙의 원리가 담긴다. 그런 의미에서 배위량이 책을 팔았다는 말 속에는 무수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책을 팔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것이고, 이 땅에서 인간이 왜 사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책 속에서 말하고 그의 행동에서 말하고 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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