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특색 있는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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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는 암소가 웃듯 소리 없이 히죽이 웃었다. 말이 좋아 율브린너와 같다는 얘기지 있어야 할 곳에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가 결코 보기 좋을 리가 없다는 마음에서였다.

“오늘 시간이 있으시니 백화점으로 모자 사러 가십시다. 이 추위에 모자가 없으면 머리가 시려서 되겠어요?” “글쎄…” 덕수는 엉거주춤한 대답을 했다.

별로 쓰지 않던 모자를 산다는 것이 썩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내의 말처럼 추위가 매서운 아침 출근길을 맨머리로 간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화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덕수는 꼬다리가 달린 빵떡모자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내 뒤를 쫓아가며 수없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있을 것도 같은데 모자가 도무지 눈에 띄지를 않았다. “여봐! 모자가 많네! 바로 등 뒤에다 두고 찾았네!” 하도 반가워서 소리친 것이 좀 컸었는지 점원이 웃었다.

덕수는 카키색의 둥글넓적한 모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머리에 썼다. “어때 이게?” “어유 그게 뭐예요. 여자거 아니에요?” “여자거라니? 화가들이 잘 쓰는 모자요 이게.” “남녀 공용이라고요? 어떻든 좀 그렇네 모양이…” “옆으로 밀어 제치면 베레모라니까.”

덕수 부부는 백화점을 나섰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덕수는 새 모자를 쓴 채 의젓하게 걸었다.

다음날 덕수는 새 모자를 쓰고 직장으로 나갔다. 만나는 직원들은 저마다 좋은 모자를 사셨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여직원들은 히죽 웃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때 내 모자가?” 덕수는 참다못해 넌지시 복도에서 만난 홍보실 이양에게 물었다. “좋은 것 같아요. 실장님 특색이 있어 보여요.” “특색이?” 덕수는 묘한 여운이 담긴 이양의 말에 어쩐지 마음이 걸렸다.

‘아무래도 모자를 잘못 샀나? 테두리보다 엄청나게 위 면적이 넓은 걸 보니 여자용인 것도 같은데…’ 그렇다면 마땅히 그게 남자용이 아니라고 점원이 말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덕수는 모자를 접어 가방 속에다 넣고 퇴근차에 올라탔다.

현관에서 아내가 웃으면서 맞았다. “왜 남녀 공용 모자를 안쓰시고 오셔요? 사무실에서 뭐래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첫마디가 모자얘기였다. “뭐 별로…” “이상하다고 안그래요?” “특색 있는 모자래.”

덕수는 안방으로 들어가 가방 속에서 모자를 꺼내 벽에다 걸었다. 이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외동딸 소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디자인북을 놓고 갔어.” “또 물건을 놓고 간 모양이구나 우리 공주님이…”

이제는 대학 3학년이나 되어 어린애처럼 안쓰럽고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숙사로 훌쩍 돌아가고 나면 허전하고 서운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다.

이때 소아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이게 웬 모자예요? 프랑스제네 참 멋있어!” 덕수와 아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엄마! 이거 나 줄려고 산거지? 그렇지 엄마!” 아내는 황급히 덕수에게 주어도 되느냐고 손짓을 했다.

“그래! 네거다.” 덕수는 큰소리로 대답하면서 아내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너 주려고 아빠가 사신 거란다.” “아빠가?” 소아의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웃음소리가 안방에서 굴러 나왔다. “아빠는 센스가 있어. 아빠는 참 멋있어!” 아내가 웃었다. 덕수도 큰소리로 웃었다. “야, 이놈아! 내가 센스가 있다고?”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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