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이치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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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저번에 미국 갔을 때 혜종이에게서 뭔가 좀 다르다고 느낀 게 없었소?”  “혜종이가요?”

 옥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컸다고 전과 같지 않던데?”

 “헤어질 때 전처럼 울지 않아서요?”

 옥희는 히죽 소리없이 웃었다.

 “그만큼 자란거지요. 남자친구도 있을게고 또 자기가 마음을 써야 할 일도 많아졌을 테니까요.”

 “당신도 그런 점을 느끼고 있었군. 그렇지 자라면 자기 나름대로의 세상을 갖게 마련이지.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한 세대가 넘어가는 거지.”

 자신도 모르게 덕수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쓸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서운하세요?”  “사탕으로 꼬시던 시절은 지나갔네.”  “그게 사는게 아니에요?”  “그야 그렇지. 이제 우리도 때가 되면 저세상으로 가는 거지.”

 덕수는 입을 다물었다. 말로는 저세상이라고 했지만 분명히 보고 겪은 바가 없는 막연한 이야기다.

 “저세상은 지옥과 천당이에요.”

 교회 권사랍시고 말끝마다 천당 지옥이라고 말을 해서 이제는 별 느낌이 없을 정도로 무뎌지긴 했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유난히도 거침없이 말을 하는 걸 그냠 넘길 수가 없었다.

 “당신 늘 하는 말인데 정말 그렇게 장담할 수가 있어서 하는 말이요?”

 “성경에 쓰여 있어요.”

 성경이라면 더는 말할 수가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있는 옥희에게 덕수는 말문이 막혔다. 한마디라도 성경을 그렇게 절대시할 수가 있느냐고 따질라치면 가문의 족보는 의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세계의 선진국들인 기독교 국가에서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성경을 당신은 무슨 이유로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느냐며 밀어붙이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글쎄 차라리 나도 당신처럼 무조건 믿어진다면 문제가 없겠는데 말이야.”  “뭐가 믿고 안 믿고가 있어요? 우리는 지구가 도는 까닭을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돌아갈 것이에요.”

 덕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옥희의 입에서 처음으로 듣는 기가 막힌 이치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몰라도 믿는다는 것! 옳은 말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으면서도 아는 이상으로 철썩같이 믿고 의심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목사님 말씀이 모두가 꼭 알아야만 살 수 있다면 한 사람도 살아있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옳은 말이야. 아는 게 없으니까?”

 “아는 게 없으니까 꼼짝을 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당신 말처럼 실제로 아는 게 거의 없어.”

 이 세상 어느 누가 모든 이치를 알아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여보! 돌아오는 주일에 당신이 나가는 교회에 나도 한번 나가 볼까?”

 “예? 당신이 교회에요?”

 옥희는 놀랐다. 얼굴이 밝아졌다.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갈듯말듯 하기를 평생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정말 오실래요?”

 “아는 게 없어 꼼짝을 못한다면야 믿을 수밖에!”

 덕수는 연거푸 머리를 끄덕이면서 눈이 부시듯이 옥희를 바라다 보았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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