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람들이 정말 자주 쓰는 흔한 말이다. 그 어감이 입에 착 감긴다. 긴 세월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한자를 쓰기 전부터 ‘길’이라는 단어가 있었다고 한다. 신라의 향가에도 나온다. 적을 청하는 말들은 거개가 우리말이다.
그런데 길 이름에는 질러가거나 넓은 길보다 돌아가거나 좁고 험한 길에 붙은 이름이 훨씬 많다. 우리 인생사처럼 말이다. 집 뒤편의 ‘뒤안길’ 마을 좁은 골목길을 의미하는 ‘고샅길’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걷는 ‘논틀길’ 거칠고 풀이 무성한 ‘푸서릿길’ 휘어진 ‘후밋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자드락길’ 돌이 많이 깔린 ‘돌서더릿길’, ‘돌너덜길’ 사람의 자취가 거의 없는 ‘자욱길’ 그리고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험한 ‘벼룻길’, ‘순눈길’을 아는가?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그대의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이다.
‘길’이란 단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참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길이 없다거나 “내 갈 길을 가야겠다”라는 표현에서 보듯 길은 삶에서의 방법이거나 삶 그 자체이다. 영어 ‘way’도 ‘Street’와 달리 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서양 사람들도 길에서 인생을 연상하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우리는 평생 길 위에 있다. 누군가는 헤매고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가고 누구는 한길을 묵묵히 간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다. 탄탄대로가 있으면 막다른 골목도 있다. 세상에 같은 길은 없다. 나만의 길만 있을 뿐이다.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명시 ‘가지 않은 길’에서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같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길을 간다’는 말보다 ‘길을 떠난다’는 말은 왠지 낭만적이거나 애잔하거나 결연하다. 결국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곧 길이요, 우리의 발걸음이 곧 삶이다.
인생길은 결국은 속도와 방향의 문제이다. 그것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이거나, 고행의 길이거나, 산티아고의 길이거나, 바이칼 호수의 자작나무 숲길이거나, 동네 둘레길이거나 결국은 ‘마이웨이’를 가는 것이다.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돌아서 갈 것인가, 인생길은 결국은 속도와 방향의 문제이다.
지름길로 가면 일찍 이루겠지만, 그만큼 삶에서 누락되고 생략되는 것이 많을 것이다. 에움길로 가면 늦지만 많이 볼 것이다. 꽃구경도 하고, 새소리와 바람소리도 듣고, 동반자와 대화도 나눌 것이다. 우리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모든 사랑은 한 장의 차표로 쉽게 가는 지름길이 아니고 수만 갈래의 에움길을 돌고 돌아 이루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자신의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야 한다. 당신의 인생길이 아름답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