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
하나님은 아담에게 경작하고 지키며 모든 것을 임의로 먹게 하시되 딱 한 가지를 금하셨는데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에게 엄청난 권한을 주셨다. 모든 것, 즉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짐승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6).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너무 사랑하셔서 모든 것 전부를 다 주셨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아담의 의지로 순종하기를 원하셨기에 자유의지를 주신 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한다는 표징으로 한 가지 언약을 세우셨다.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사랑의 표현으로 한 기준을 주신 것이다. 또 선악과는 과일 자체에 신비한 요소가 있어 먹으면 하나님과 같은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독약이 들어 있어 먹으면 죽는 과일도 아니다.
히브리말로 ‘야다’(안다)라는 말은 단순히 지식의 인식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경험, 즉 실제로 행동화되어 죄와 타락의 경험을 통해 죄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적 선택권을 준 나무의 열매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얼마나 사랑하느냐의 사랑의 기준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존재의 위치를 망각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동산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데도 사람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은 주인이 될 것이라는 교묘한 유혹,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 서서히 스며들어오는 유혹, 눈이 밝아져 하나님 처럼 된다는 뱀(사탄)의 유혹, 다시 말하면 루시퍼 사상이다. 유혹은 원래 달콤하다. 그리고 결과는 무섭다. 성경에 유혹의 예는 성군 다윗왕을 비롯해 넘어진 예가 많다. 이성이 마비되고 나의 의지와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우리는 늘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해 주실 것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똑같은 위치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죄인인 인간의 한계이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무서운 사상에 넘어갔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깨트리는 무서운 반역의 타락 현상이 아담과 하와를 지배했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죄가 인류에게 유전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선악과를 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며 영광 돌리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보고 왜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짓도록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결국 바울의 말과 같이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어 방해물과 올무만 되는 것이다(고전 1:18).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짓고 마귀 편에 설 것을 이미 아시고 창조 전부터 구속사적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딤후 1:9).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20).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침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이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