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회당서 펼쳐진 예기치 못한 복음의 역사
부흥회에서 경제발표회로 바뀐 중국 방문
4천 명 중국 지도자들에 전해진 하나님 복음
기쁜 마음으로 목사님 방을 나와 보니 함께 준비한 사람들이 텅빈 교회 마당의 주차장 불빛 아래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두 손을 치켜들고 흔들자 “와!”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제 출발만 남아 있었다.
인민대회당에 울려 퍼진 복음
1996년 7월 10일, 곽선희 목사님과 정근모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을 비롯해 홍재형 전 부총리, 정인용 전 부총리, 김선홍 당시 기아차 회장,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목사, 김석산 대전순복음교회 목사, 김수웅 CBMC 회장, 장광영 감리교 총감독, 유태영 건국대 부총장, 홍인기 증권거래서 이사장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함된 방중단 412명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중국항공에 나눠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드디어 출발하게 된 중국행 비행기 안에 앉아있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만 들어 있었다. ‘만일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으면 이 인원을 끌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른다’는 것과 ‘나머지 20만 달러를 현지에서 전달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 공항에 도착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벤츠 5대와 고급 관광버스 10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던 것이다. 차가 출발하자 중국 경찰대 오토바이가 에스코트를 했다. 더구나 도로를 통제했는지 다른 차들은 보이지 않고 길이 뻥 뚫려 있었다.
최고급 쉐라톤 호텔로 안내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집회 장소를 아직까지 통보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진행자에게 물어보니 “내일 가보시면 압니다”라고만 했다. 뭔가 불안했지만 너무 예민한 건가 싶어서 그냥 넘어갔다. 장쩌민 주석 의전 담당관들과 여러 가지 회의를 하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하나같이 선한 인상들이었다. 애써 안심하려고 노력하면서 다음 일이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 도착 직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주최 측이 목사님의 원고를 미리 보자는 것이었다. 얼마 뒤 그들이 되돌려준 곽 목사님의 설교 원고에는 곳곳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교회 설교 용어를 모두 종교색이 없는 언어로 바꾸라는 것이다. 목사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난감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목사님 방을 찾아가 노크했다. 주무시다 일어난 목사님께서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셨다.
“지금에 와서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다음날인 1996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역사적인 부흥회가 열린다는 기대를 품고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놀랍게도 그곳은 인민대회당이었다. TV에서 봤던 중국인민대표대회 회의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국 중서부지역 개발 투자 합담 연토회’, ‘중한 경제 기술 교류회’ 등 낯선 행사명을 보는 순간 내 안에 커져가고 있었던 찜찜함의 실체를 깨달았다. 이 행사는 부흥회가 아니고 중국 중서부 내륙지역 경제개발계획을 전 중국에 발표하는 국가 행사였다. 이 행사에 우리를 참여시킨 것이다.
중국의 ‘경제특구’로 내륙 농민들이 대거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 제3회 전인대회에서 추진토록 결정한 ‘중서부 지역 내륙경제 개발계획’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선포하는 자리였다. 부흥회인줄 알고 방중한 우리를 외국 전문인, 기업인, 정부 관계인 등으로 둔갑시켜 투입한 것이었다. 참가자들 명찰이 전부 사장, 회장, 교수, 부장, 국장 등으로 명기된 채 준비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주석 대기실에서 중국 지도자들이 단 것과 같은 빨간색 명찰을 패용한 채 중국 고위층과 상견례를 했다. 자리를 안내받고 보니 TV 뉴스에서 봤던 인민대표대회에서 등소평, 장쩌민 주석이 앉던 단상에 앉은 시진핑 주석을 보면서, 바로 저 자리에 곽선희 목사님이 앉으시고 나와 11명의 한국 대표들, 그리고 중국 서열 상위 50명이 뒷줄에 앉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단상 위에서 보니 각 성 대표, 당 서기, 개발 책임자 등 전 중국에서 모인 인사 4천 명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 일행 400명은 가장 중심 좌석에 앉아 있었다.
곧 곽 목사님의 연설(설교) 순서가 됐다. 나는 또다시 마음이 불안해졌다. 지난밤 중국 측의 요청에 의해 곽 목사님의 원고를 수정했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목사님은 분명 수정된 원고로 설교하셨는데 통역사는 수정 이전의 원고로 통역을 했다. 행사 책임자들은 얼어붙은 표정이 됐지만 4천여 명의 청중은 열렬한 박수로 호응했다. 40여 년 동안 공산주의 사상 교육에만 익숙해 있던 그들에게는 처음 들어본 하나님의 복음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듯했다. 다시 말해 4천여 명의 중국 최고위층 서기장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직접적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실황은 TV로 전 중국에 중계됐다.
이런 놀라운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행사 후에 통역을 맡은 교수가 주최 측 책임자로부터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참석자들과 만나보니 반응이 매우 좋았다. 그때부터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지고 어떤 기적이 또 벌어질까 기대하며 즐길 수 있었다.
인민대회당 행사가 끝나고 2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인민대회당 내 식당에서 우리 일행 400명과 중국 각 성의 지도자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이때 또 한 번의 이변이 벌어졌다. 식사하는 동안 우리 일행 중에 음악단이 함께 왔는데 노래를 해도 되느냐고 행사 책임자에게 간청했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저쪽을 가리키면서 헤드테이블에 앉아있는 부주석이 허락해야 된다고 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