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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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망신당하던 그 날 (2)

또 하나 놀라운 시설이 있었다. 건널목에 왔을 때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왔다. 함께한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노래 소리가 날 때는 횡단보도를 왕래할 수 있다는 안전 신호라고 일러주었다. 정상인들도 장애인 덕분에 음악소리에 맞추어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며 나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느꼈다. 다행히 이웃 나라의 본을 따서인지 우리나라도 1981년부터 서서히 횡단보도에 신호음이나 메시지를 담아 실행하게 되었다.

나는 동경 근처에 자리한 신주쿠라는 곳에 갔다. 시에서 경영하는 시각장애인도서관이 있었고 또한 시각장애인직업재활 센터와 각종 침술원들이 있어서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곳 역시 도시 전체가 길바닥에 점자 표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길모퉁이마다 시각장애인들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자동으로 종이 울릴 수 있게 해놓았다. 그 종소리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길 안내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장치나 표지는 일본 전역에 만들어 놓은 시스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이러한 시각장애인복지제도는 미국의 사회복지문화제도를 받아들여 만든 준복지 제도라고 한다. 일본 속에 준복지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일본 시각장애인의 시조 이와바시 선생의 공헌이 지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나라 역시 준복지 제도 정도는 해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흥분되기도 했다.

도서관을 둘러보거나 재활센터를 방문하면서 그곳 지도자들에게서 장시간 보고도 받고 함께 토의도 했다. 여기서 내린 결론들을 통해 여러 가지 구상을 할 수 있었고 사역에 필요한 정보도 수집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서 배운 점은 봉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결같이 성실하게 봉사하고 있는 모습과 최선을 다해 한 가족처럼 업무에 임하고 있는 자세였다.

그들은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몸에 밴 친절과 봉사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종소리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어서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시각장애인들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사회가 낙후한 이유

그런데 왜 우리 한국의 시각장애인은 일본의 저들보다 못살고 뒤떨어진 대우를 받고 있을까. 우선 우리 사회가 이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가령 어느 가정에 시각장애인이 태어나면 죄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하면서 갓난아기를 맹학교 정문 앞에다가 몰래 버리고 간 부모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전생의 업보 같은 벌을 받았다는 강박 관념이 어느새 관습처럼 내려오고 있다.

상인들 중에는 이른 아침에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 재수 없다고 침을 뱉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사회적으로 인정해야 할 기본권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그릇된 관습이나 미신 따위의 의식은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개선되지 못하는 데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각장애인의 신체적 약점과 경제적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악덕인들이 독버섯처럼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각장애인을 자기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편리한 도구로 생각하고 인권마저 무시하고 있다. 악덕인 중 시각장애인을 이용해 떼돈 번 부자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정작 그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설이나 도서관 같은 곳이나 혹은 재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우리 시각장애인 사회가 낙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와 비교해 선진국의 사회복지제도와 정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예를 본다면 시각장애자들 중에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500여 명이나 되고, 대학교수만 해도 1천 명에 이른다. 독일의 기민당 원내 총무는 장애인이다. 우리는 가끔 TV 화면을 통해 휠체어를 타고 국회의사당을 왕복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웃 일본에도 시각장애인이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선교란 명목으로 헌금을 모아 놓고 장애인들을 위한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면 이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사실이 교계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

시각장애인을 돕는다고 모종의 기관을 만들어 교회와 단체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모아 놓고도 그들을 위한 도움을 전혀 주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양심과 신앙을 속이는 비도덕적 행위로서 사회적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교계의 지도자가 이러한 일에 현혹되었을 경우 철저하게 반성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가 불명예스러운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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