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야기] 미지의 땅 뉴질랜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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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여쭙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방 세 개만을 들고 무작정 찾아간 미지의 땅 뉴질랜드, 하나님께선 나와 우리 가족들을 어떻게 인도하실까? 우리의 미래도 저 햇살처럼, 저 푸른 바다처럼 눈부실 수 있을까?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영어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영어 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게 인도하셨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학교에 오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학교에 간 첫날, 내 소개를 했더니 옆에 있던 뉴질랜드 학생이 말했다.

“인사를 영어로 해야지, 왜 한국말로 하나요?”

그 친구가 내 한국식 발음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의사소통이 잘될 리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해도 과제물을 제출하기가 어려웠다. 영어로 신학을 공부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물론 제일 큰 고통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뉴질랜드에 올 때는 신학을 마치고 현지 선교 단체에 취직해서 선교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알아보니 선교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다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나 같은 동양인이 취직해서 월급 받으며 일할 곳은 없었다. 내 꿈은 이뤄질 가능성조차 없어 보였다.

수중에 돈은 줄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신학교를 졸업해도 나를 불러줄 곳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절망스러웠다. 오죽하면 새벽에 공부를 하다가 책을 집어던져 버렸을까. 정말 하나님께 매 맞을까 봐 죽지 못해서 하는 공부였다.

1년이 지나니 더 이상 공부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라도 구해 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나이 든 동양인을 써주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다리에 장애까지 있어서 노동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매일 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나님께 여쭙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오직 기도로 매달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를 주셨다. 그때는 이민의 문이 열려서 뉴질랜드로 이민 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았고,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들도 급증하는 추세였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 영어 과정을 개설해서 유학생들을 신앙 안에서 공부시키라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신학교 학장님에게 영어 과정을 개설하자고 제안했다. 그 당시 신학교의 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유학생이 많이 오면 신학교도 도울 수 있고 내 미래도 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안을 들은 학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면서 교단 측과 상의해 본 후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바로 답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1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애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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