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상 근거를 가지는 것은 없었지만 고려 형법에는 형벌을 태, 장, 도, 유 및 사의 5종으로 정했다. 이를 재래의 형벌과 비교하면 새롭게 태형 및 도형을 두었고, 유형은 이수제(里數制)에 의해 그리고 배역(配役)을 부가했으며, 사형은 참(斬)과 교(絞)의 2종으로 하고, 또한 장으로 절산환형(折算換刑)할 수 있도록 하는 외에 동(銅)으로서 하는 수속(收贖)제도를 인정하고, 사형 이외의 각 형에는 각각 죄의 경중 등에 따라 가감(加減)할 수 있도록 형량에 범위를 정하는 등 현저하게 특색을 가졌으며 형제상 실로 하나의 신기원을 긋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실제 형정은 면목을 일신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고려 형법 실시 후 상황과 성과 등에 대해서는 역사상 아무런 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전혀 판명되지 않지만 멀리 내려와 신우 원년에 ‘(전략) 법률에 정해진 이외의 형벌을 사용하지 말라. 도역(徒役)에는 정해진 연한이 있으니, 이미 그 연한이 만료된 자는 석방할 것이요, 금고(禁錮)하거나 천인(賤人)으로 만드는 일이 있으면 또한 철저하게 조사하여 아뢰라’와 같은 하교가 있었다. 그 반면에서 살펴보면 당시 율(律) 외의 형, 즉 형법에 근거하지 아니하는 형이 남용되는 것과 같은 폐해가 생겨나고 있었던 사실이 열거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다수 존재했다.
또 도형의 만기 석방에 해당하는 자를 노예로 몰입해 두고 있었던 사실 등도 있었다. 유형도 이수제(里數制)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실제는 종전과 같이 모두 지정된 지방에 유배하고 있었다. 고려형법지의 서문에도 ‘(전략) 그런데 그것을 폐하거나 금망(禁網)이 펼치지 아니하고 형을 완화하고 수 차례 사면하여, 간흉(姦凶)한 무리는 법을 벗어나고 제멋대로 하는 것도 말리지 아니하여 말세에 이르러서는 그 폐해가 극에 달하였다. 그래서 원나라의 『의형이람(議刑易覽)』과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섞어 사용하자는 건의가 있었고, 또 『지정조격(至正條格)』과 『언행사실(言行事實)』을 함께 채택해 책으로 하는 자도 있었으며, 이러한 시대의 폐해를 구제하는데 공을 세웠다고 하지만 대강이 이미 무너져 나라의 기운이 이미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등등’이라고 기술하고 있을 정도로 절각(折角)의 형법도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실로 도법(徒法)에 속해 있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행형 면에도 아무런 면목을 개선한 점은 없었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