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이스라엘의 불신을 어떻게 이해할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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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된 백성으로 특권을 받았지만 우상숭배로 불신의 늪에 빠져 버렸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이 신실하지 못하다거나 불의한 탓으로 돌려서는 결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른 뜻’.  “그는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라.”  하나님의 끈질긴 구애(求愛)를 ‘이스라엘이 완강하게 거부한 탓’으로 돌린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가 넘어짐은 일시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적인 섭리는 많은 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기업(基業)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을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으로 묘사한다.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七) 천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만이  택하심을 은혜로 얻는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사(奇事)를 목격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으셨다”고 말한다. ‘혼미(昏迷)한 심령’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늘날에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의 불신과 타락을 통해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다.  이러한 구원이 이스라엘을 시기(猜忌)나게 만들어 그들이 회복 또는 충만해지도록 이끌었다. 이렇게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면 이스라엘은 회심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곧 내 골육을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다. 우리는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성경은 난해(難解)한 말씀이다.

칼빈의 말이다.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백성”은 누구인가? 칼빈은 이를  ‘교회에 대한 언급’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도 교회를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 오기까지 이스라엘이 완악(頑惡)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그에 반응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칼빈은  이 이스라엘을 교회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는’ 이유가 되었다.

칼빈은 “나는 이스라엘이란 단어에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포함시키도록 확대하겠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돌아왔을 때 전체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렇게 해서 완성될 것이다.”라고 한다.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 차이가 없다고 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으랴. 누가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하나님은 전능자,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 되신다. 할렐루야! 아멘.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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