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48년에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직접 비밀 평등 보통 선거의 4대 원칙에 따라 5.10 총선거를 실시해 국민들이 위정자를 선출했다. 이 선거로 구성한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고, 제헌 헌법 공포(7.17)와 정부 수립(8.15)을 했다.
호주 원주민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서 선거권을 얻었다. 원주민에게 최초로 선거권을 부여한 주는 남호주(South Australia)였다. 1856년 남호주는 원주민을 포함한 21세 이상의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빅토리아(1857년)나 뉴사우스웨일스(1858년)보다 앞선 기록이다. 반면에 퀸즐랜드와 서호주는 1960년대 중반까지 원주민의 투표를 법으로 금지했다.
남호주는 1894년 법 개정을 통해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1895년에 이를 시행했다. 이로써 남호주 원주민 여성은 세계에서 드물게 동등한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1901년 호주 연방이 결성될 때 남호주 원주민들은 1902년 연방 선거법의 제한 속에서 예외적으로 연방 투표권을 유지했다.
1949년 원주민의 투표권이 부분적으로 확대되었다. 호주군에 복무했거나 주 선거권을 가진 원주민이 연방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62년 로버트 멘지스 정부는 연방 선거법을 개정해서 원주민에게 연방 선거 투표권을 부여했다. 다만 다른 국민과 달리 원주민의 선거인 명부 등록은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었다. 1965년에 퀸즐랜드 주가 마지막으로 원주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서 원주민도 호주 전역의 모든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1967년 호주 국민투표는 원주민을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인권 역사에게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다소 제한은 있었으나 각 주가 원주민에게 이미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표권 자체보다 원주민의 온전한 시민권 회복과 연방 정부의 책임 강화라는 법률적 변화를 가져왔다.
개정 이전 호주 헌법 제127조는 “인구를 계산할 때 원주민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헌법 개정으로 이 조항을 삭제하고 원주민을 국가 통계와 인구 조사에 포함해 호주 국민으로 공식 인정했다. 더불어 헌법 제51조 26항 “원주민을 제외한 특정 인종을 위한 특별법 제정 권한”에서 ‘원주민을 제외한’ 문구를 삭제했다. 이로 인해 각 주의 원주민 관련 사무를 연방 정부가 직접 관장하고, 전국 단위의 지원 정책과 보호법을 만들 토대를 마련했다.
1967년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90.77%라는 역대 최고의 찬성률을 기록해서 호주 사회가 원주민을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였다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를 확인했다. 국민투표 이후 연방 정부는 후속 조치로 원주민부를 신설하고 토지 권리 인정이나 차별 금지법 제정 등 정책 변화를 이루었다.
1967년 국민투표 사건에는 페이스 밴들러(Faith Bandler)를 비롯한 원주민 활동가들의 10여 년에 걸친 로비와 ‘YES’ 캠페인과 같은 원주민과 지원자들의 노력이 컸다. 언론도 호주 사회의 낙관주의와 인종 화합에 대한 열망을 끌어올리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국민투표 이틀 전에 시드니 모닝 헤럴드 1면에 백인 소년 마크와 원주민 소년 빅토르가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원주민 투표권의 완전한 평등은 1984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연방 선거법 개정으로 원주민의 선거인 등록과 투표를 의무화해서 제도적 차별을 철폐했다. 원주민은 130년 가까이 다방면에 걸친 끈질긴 사회적 노력 끝에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획득했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