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Q] 바로의 장자(왕세자)가 출애굽 사건 시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실 때 죽었다는 어떤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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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의 시기와 당시 애굽의 왕은 누구인가?

어느 나라든지 자기들의 부끄러운 역사는 잘 기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집트 문명의 기반을 둔 오랜 세월의 대국이며 신과 같은 왕, 또는 절대적인 황제 시대에는 자기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록할 리가 없다. 만약 그것이 대대로 많은 사람과 주변 나라에 알려진다면 신의 대리자 또는 신인 애굽의 왕 바로가 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출애굽 사건을 감추고 있어 일어난 연대에도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다. 

1. 한가지는 주로 성경을 근거로 한 15세기 설(성경 왕상 6:1 근거)이다. 파라오는 투트모스 3세나 아멘호테프 2세 때로 추정한다. 열왕기상 6장 1절에 의하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검증된 연도로 솔로몬의 통치가 주전 970년이라고 보면 성전 건축은 왕이 된 지 4년 후인 주전 966년에 시작된다. 그러면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때는 주전 1446년 아니면 1445년이 되는데 당시 애굽의 18왕조 기간으로 대체로 투트모스 3세라고 알려진다. 

이 왕은 출애굽기 2장 11~15절에 나오는 왕으로,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피신한 당시의 왕이 바로 투트모스 3세며 이스라엘 민족을 압제한 왕이다. 

그는 주전 1447년에 죽고 아들인 아멘호텝 2세가 왕이 되었을 때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고 그는 주전 1421년까지 통치했다고 하며, 아멘호텝 2세에 이어 아들 투트모스 4세(B.C. 1421-1410년)가 왕위를 계승했다. 연도는 학자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또 사사 입다(사사로 활동 BC 1100년 경)가 거주한 지 300년(삿 11:26)과 광야 40년의 합계는 약 1440년이며 또 BC 14~15세기에 작성한 텔 엘 아마르나문서에 “골칫거리 하비루”라는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하비루가 헤브라이 민족(히브리 민족)을 포함한 표현이다. 

2. 또 하나는 역사를 근거로 한 13세기 설(람세스 2세 시대)이며 신왕조 19왕조 람세스 2세 때 최고의 전성기에 카르나크신전과 아부심벨신전 등 대규모 토목, 건축 사업을 했다. 성경의 비돔, 라암셋의 국고성 건축 정황과 아주 비슷하다.

또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기록문서 <메르넵타 비문> B.C 1230 경 이스라엘 비문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자손들은 사라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3. 투트모스 3세 재위 22년, 즉 핫셉투드는 죽고 그 후 투트모스 3세는 그녀의 역사 기록을 모조리 지워버렸고 후에 아멘호텝 2세(BC 1447-1421년 통치)로 이어졌다. 출애굽 사건이 발생할 때 바로의 장자(형 웨벤세누)에게 갑작스런 죽음의 재앙이 있었다고 한다. 

즉, 투트모스 4세의 형 웨벤세누가 갑자기 희생되고 동생 투트모스 4세가 형을 대신해 파라오가 되었다. 이 증거로는 투트모스 4세의 돌비석에 꿈에 태양신 Ra 계시한 기록이 있다. <기자의 스핑크스로 스핑크스 양발 사이 화강암으로 된 돌비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투트모스 4세는 사냥 중 꿈속에 태양신 Ra를 만났다, Ra신이 ‘모래에 파묻힌 스핑크스(자신)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해주면 너를 파라오로 세우겠다.’ 태양신의 지시대로 모래를 제거하고 스핑크스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돌비석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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