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남에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 소다의 만남이 표면적으로는 세 사람이지만 내면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도 학문적인 만남이 아니요, 한 사람의…
교계이슈
그는 親韓 派, 親日派의 사이에서 오해와 미움도 받았지만 그를 아는 조선인들은 그를 진실한 기독교인으로 기억하고 복음을 몸으로 전해주기 위해 일본에서…
일본의 유족대표 소다(曾田) 翁의 생질(甥姪)과 일본 전 수상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소다 옹의 고향 사람으로서 소다 옹을 매우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소다 선생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1962년 4월 2일 영락보린 원, YMCA를 비롯한 NCC, 한국 사 회복지사업전국연합회, 대한상공회 의소 등…
신문 기자들은 면담을 요청하고 “반생 동안 한국 고아의 아버지, 한국 영주권을 가진 소다 옹, 조국 전도를 위해 귀국”이란 제호로 기사를…
소다 가이치의 부인 우에노 다끼는 서울에서 고아원을 계속 운영했다. 사랑하는 한국의 고아들을 그냥 두고 고국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다는…
소다 선생은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일제의 무단정치에 분노하였다. 그는 105인 사건을 조작했던 데라우찌 총독과 일본인 경성기독교회(해방 후 덕수 교회) 장로이며…
소다는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같은 선한 조선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소다는 죽음을 면했다. 소다는 방황에서 깨어났다. 그…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의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일본인이라면 적대시하던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 고아의 아버지로 존경받은 ‘일본인’ 41년간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며…
록펠러는 예술은 무시했고, 정치는 혐오했다. 하지만 손자인 넬슨 알드리치 록펠러는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에 까지 올랐다. 넬슨의 남동생 위드롭은 아칸소 주지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