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32) 우남 이승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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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서 독립운동·평화운동의 정치가

한국 초기개신교 지도자, 국가 기독교 부흥 도움

이승만 대통령은 對美, 對日 관계에서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이익을 우선으로 했다. 공개된 소련의 비밀자료에는 스탈린이 한반도를 분단해 공산화하려 했다. 또한 분단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은 김일성이었다. 4. 19 이후 이승만의 부패한 재산을 환수하겠다는 위원회까지 만들었으나 이승만의 청렴함이 나타났다. 

이승만은 독립운동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역경을 돌파했으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세계에 호소할 때 일본의 방해와 대한민국이 작고 개화되지 못한데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문화국가가 되어야 했다. 그 기초가 기독교 신앙이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극동에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온 국제적 평화를 위한 국가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기독교 국가로서 신앙적 선진이 되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이승만은 정치가로서의 기독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치가였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독립운동을 했으며 공산주의와 무력을 배제하고 외교적, 합리적 관계로 평화운동을 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유민주주의, 한․미 동맹, 시장경제 체제, 기독교 입국론이라는 분명한 국정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기도하는 진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그의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에서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 예측했다. 1945년 8월 해방 후 박헌영을 중심한 공산세력, 일제 때 지주들의 한민당, 또 미소공동회의 추종파가 있었다. 국민들은 중국, 소련 유학파 지식층의 영향 때문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선호했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사상으로 대한민국을 세웠다.  

이승만이 대한독립에 기여한 업적은 기독교 신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초대 대통령으로서 좌우 혼란기의 대한민국을 공산화의 위협으로부터 지킨 힘은 기독교 신앙과 자유 민주주의였다. 무신론자인 북한과는 거리를 두었다. 일본은 항상 침략을 노리고 있었다. 

이승만은 최초 양반출신 기독교인으로 한성감옥에서 쓴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은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 즉 ‘기독교 입국론’이었다. 이승만은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물고기가 살려면 새로운 물을 찾아야 하며 새 물줄기는 바로 기독교다”, “대한 사람의 새로운 물줄기는 예수교회”라고 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기독교 교육과 선교의 꿈을 갖고 공부했다. 서울과 호놀룰루의 YMCA에서 기독교 청년운동과 교육을 했고 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 초기개신교의 지도자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 차원에서 기독교 부흥을 도왔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주초(酒草)를 금했고 매일 아침 아내와 가정 예배를 드렸다. 그는 90 평생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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