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1912년)과 더불어 1913년에 시작한 중화민국(中華民國) 산동(山東)선교는 1917년 이르러 선교사 2명이 임지를 떠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총회 전도국은 김영훈,…
빛을남긴선진들
구미에서 상주까지 (44) 상주(尙州)는 상기(上記)한 바처럼 경상도(慶尙道)란 지명이 나온 터전이다. 그 정도로 상주란 도시가 민족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1916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선교사의 이중 소속문제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리하여 1916년부터는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파송되면 소속도 중국 측 노회로 옮기게 되었다. …
구미에서 상주까지 (43) 배위량이 1893년 4월 28일 금요일 오전에 상주에서 쓴 일기에 보면 낙동에서 상주로 오는 과정과 상주에 도착해서…
동료 사병순 목사는 딸 한 명뿐이었으며 래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교사의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커다란 기쁨이요, 부모 때문에 선교지에 오게…
구미에서 상주까지 (42) 배위량 순례길은 상주시에서 낙동강의 나루터가 있는 낙동에서 시작된다. 배위량은 1893년 4월 27일 목요일에 상주로 갔다. 그리고 5월…
1917년 중화민국 선교사로 래양에 파송되어 선교한 홍승한 목사는 언어공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世上에 學키 容易한 文字는 別無하되 中國漢文字란…
중국교회 지도자들의 태도 1913년 중화(中華)예수교장로회 화북대회(華北大會)가 개최되었을 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파견을 받은 박태로 선교사 그리고 김찬성 목사가 조선교회의 산동선교 문제를…
구미에서 상주까지 (41) 상주자전거박물관에서 한 20 분 정도 낙동강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 가다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 면 경천대가 나타난다.…
김영훈 선교사와 두 가정 조선(朝鮮) 선교사들이 부임하여 선교사역을 시작한 선교지의 이름은 당시 행정구역상 래양현(萊陽縣)으로 불렸던 지역이다. 1937년부터 1957년까지 산동(山東) 선교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