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59)-사도 요한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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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3장 16절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신약성경 전체 내용을 요약한 구절이다. 영역 성경에는 “독생자”를 “아들(Son)”로 번역하지만, 그리스어는 모노게네(monogene), 즉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는 뜻이므로 독생자가 정확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과 특수한 연관을 맺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아들과 딸이라는 점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을 했고 스데반이 설교하던 중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 후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도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주후 50년에 예루살렘에 갔을 때 사도 요한을 만났다.
사도 요한이 왜 예루살렘을 떠났는지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간 곳이 에베소였다. 이때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에베소 방문(행19:21) 후였다. 에베소에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웠고 에베소교회 목회자는 디모데였다. 사도 바울은 로마 성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디모데도 에베소의 우상 아데미 신을 섬기는 이들에게 순교했다. 그 후 사도 요한이 에베소교회를 목회하였다. 에베소뿐 아니라 소아시아 교회들을 다니며 돌보았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곳에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어렵고 박해당하는 교회들을 보살피며 함께 박해를 극복하는 신앙적 삶을 살았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많은 전설을 남겼다.
사도 요한은 한편으로는 예수님과 그의 첫 제자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예수님과 실질적인 접촉이 없이 로마제국의 대도시들에 열정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 이 양자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었다.

사도 바울이 순교한 후에 사도 요한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곧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기원 30년부터 44년까지 예루살렘 교회가 모교회로서 그리스도교의 중심적 지위에서 번성하고 있을 때는 베드로가 그 지도자였고, 기원 44년부터 68년 사이 아시아와 유럽에 여러 교회가 설립되고 안디옥이 교회의 중심이었을 때는 사도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지도자들이었다. 이때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기독교는 심한 박해 속에서도 70년 동안에 크게 확장되었다. 이때 교인 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글로버 박사(Dr. Glover)는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근거 삼아서 사도 시대 말기의 교인 총수는 약 50만 명은 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고 했다. 교회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었으며 상류 계급부터 노예들까지 있었다. 초기부터 로마 전역에 걸쳐서 전파되었다. 그리스도교는 모든 국경을 타파하고 국가들의 교회, 공동의 교회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다. 다음 약 30년 곧 제1세기 말기에 에베소교회가 중심적인 지위에 처해 있을 때는 사도 요한이 저명한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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