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수메르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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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고산 지대에서 발원한 유프라데 강과 터어키 중부 산악 지대 호수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티그리스 강은 오늘날 이라크 지역으로 흘러든다. 상류에서는 두 강의 간격이 대단히 크지만 하류로 내려갈수록 그 간격은 점점 좁아져 강 하구에서는 마침내 두 강이 합쳐져서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두 강 사이의 땅을 희랍어로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른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크게 북부와 남부 둘로 나눌 수 있다. 전체적으로도 비옥한 땅 메소포타미아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평평한 평원이 되고 더욱 기름진 땅이 된다. 즉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역은 옥토 중에서도 가장 기름진 옥토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남단 지역을 고대인들은 ‘수메르’라고 불렀다.

기원전 5000년경부터 수메르 지역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정착한 고대인들은 수렵 생활을 끝내고, 비옥한 땅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도 형성되었다.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물(농수)의 공급이다. 그 지역은 강수량은 많지 않으나, 큰 두 강이 있기 때문에 수원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강물을 농사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로를 만들고, 때로는 운하를 만들어야 했다. 이런 대공사는 몇 사람의 소수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의 힘을 동원해야 했고, 이를 지휘 감독하는 지도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농지에 물을 배분하는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럴 때 시비를 가려줄 식견과 권위를 갖춘 사람도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출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등장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공동체의 수장, 곧 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왕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자연히 사회 조직을 갖춘 ‘도시 국가’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살 집을 지어야 했고, 왕을 위해 왕궁도 건축해야 했다. 또 그들이 섬기는 신을 위한 신전도 세워야 했고, 공격해 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성벽도 쌓아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그 지역에는 건축에 필수적인 석재가 없었다. 수메르 지역은 워낙 큰 평원 지대여서 건축에 필요한 석재를 얻을 수 있는 산이 없었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고대 수메르인들은 ‘돌 대용품’을 고안해냈다. 그것은 그 지역의 토양인 충적토 진흙을 이용해서 ‘진흙 벽돌’을 만들어낸 것이다. 진흙을 다져 벽돌 모양을 만들고 높은 온도에 구워서 단단한 진흙 벽돌을 만든 것이다. 천연적인 석재가 없는 지역에서 석재 대용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진흙 벽돌을 사용해 건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흙 벽돌 사이에 시멘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물에 다진 진흙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보다 훨씬 우수한 자재를 찾아냈다. 그것은 역청이었다. 진흙 벽돌 사이에 바른 역청은 단단히 굳어 시멘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필자가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곳곳에 작은 웅덩이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웅덩이에는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시커먼 아스팔트 역청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하의 기름이 새어나와 역청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이라크는 세계에서 기름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진흙 벽돌과 역청을 이용하여 그들은 성벽을 쌓고, 거대한 궁전과 신전을 건축하였다.

박준서 교수<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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