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내 길의 한 줄기 빛 이만영 장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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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터전인 도림교회(14)

도림교회를 통한 기관사역

이만영 장로는 도림교회를 통해 여러 가지 기관사업을 감당해 왔는데, 그 뿌리는 도림교회 3대 담임목사인 유병관 목사와 함께 시작하여 그 뒤를 이은 유의웅 목사와 수많은 기관사역을 함께 해 왔던 것이다. ‘도림교회 70년사’에는 이만영 장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는 도림교회에서의 사역이 아닌 기관사역에 대한 내용이다.
“교회의 큰 사업에 항상 앞장서고 있는 이만영은 1980년대 초 전국남선교회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총회자선사업재단 이사 겸 안양원로원 원장으로 봉사했다. 그는 1984년 남서울 기독실업인회 회장을 역임했고 1985년에는 청소년 선도사업에 공헌한 일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평신도회보사 사장에 취임하여 3년 동안 봉직했다. 그는 198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자선사업재단 1억 원을 헌금하였다. 그는 또 1992년 영등포노회 장로회 제40회 총회에서 회장에 피선되었고, 1993-94년도 영등포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했다. 이만영은 1996년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자선사업재단 대표이사에 취임하여 교단 내 자선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다.”

또한 한국장로신문 2005년 2월 5일자에는 이만영 장로의 기관사역에 대한 기사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정도를 걸으며 자신을 낮추어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드높이려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하였다.

“총회자선사업재단 대표이사로 봉사할 당시에 독지가의 후원으로 공주원로원 부지를 매입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해 자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바 있고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 부회장, 영등포노회 장로회장, 영등포노회 남선교회연합회장, 평신도신문 사장을 지내고 현재 평신도신문 명예사장으로 있는 등 남선교회전국연합회의 자립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했다. 이 장로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여의도 자택을 담임목사인 유의웅 목사에게 드리는 등 그의 봉사 정신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 장로는 정희영 권사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도림교회에서 평생 봉사하는 일생을 살아온 이 장로는 도림교회 건축위원장으로 도림교회 본당, 교육관, 사회봉사관 건축에 많은 공헌을 했다. 이 장로는 말없이 일하는 사람이다. 그를 추켜 세운다든지 내세우는 것을 무척 꺼려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명예가 앞서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 장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를 가리켜 원만하고 겸손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정도를 걸으며 자신을 낮추어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드높이려는 인물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이만영 장로가 도림교회를 통해 전개한 각종 기관 사역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각 항목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위의 사실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노회 및 총회

이미 언급한 대로 이만영 장로는 영등포노회 장로회장, 남선교회 영등포노회연합회 회장, 영등포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하면서 노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영등포노회 성서신학원 이사장으로 평신도 지도자 양성에 공헌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이사장으로 추대되었다.
노회에서 이만영 장로는 노회장으로 추천을 받기도 했는데, 그는 장로는 부노회장까지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그 추천을 고사하기도 하였다. 이만영 장로는 영등포노회 회관의 필요성을 제일 먼저 제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건축 헌금도 솔선수범으로 하여 노회 회관 건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 74회 총회 시기인 1989년에서 1990년 회계를 지냈다. 당시 회계는 지금의 회계 역할과 달랐다. 지금은 총회 결의대로 집행을 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필요할 경우 회계가 필요한 자금을 책임져야 할 때였다. 특별히 총회 직원들의 급료를 책임져야 할 때였다. 따라서 총회 회계를 선임할 때는 이러한 능력이 참고 되던 시절이었다.
이만영 장로가 총회 회계를 맡으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재정 창구를 일원화하는 정책이었고, 이는 총회 결의로 결정되었다. 당시 각 부서에서는 부서장의 책임 하에 재정을 책임졌다. 따라서 총회에서 재정 지출을 합리화 하는 차원에서 재정 창구 일원화 정책을 결의한 것이었다. 이만영 장로가 재임 중 이 정책을 무리 없이 잘 완결하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만영 특유의 인품과 성실함으로 재정 창구 일원화 정책을 실행하여 총회 시스템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만영 장로의 재임 기간에는 총회의 상회비가 완납되었다. 당시 상회비는 4억 9천 3백만 원 정도였는데 49개 노회가 모두 완납을 하였다. 당시 회계는 사회부에서 관리하고 있던 총회 연금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연금위원회에서 중심을 잡고 일처리를 하였다.
1989년 당시 총회의 연금 규모는 31억 2천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의 연금 규모는 약 3천억 정도로 그때에 비해 100배 정도로 확대되었다. 총회 회계실의 이식영 장로는 다음과 같이 당시의 일을 증언하였다.

“이만영 장로님은 제가 아직까지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지만 동시에 듬직하게 일 처리를 하시는 분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직원들을 잘 격려해 주시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늘 실무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간혹 증경 재정부장 모임이 있을 때면 오셔서 직원들을 위로하며 격려해 주시는 아주 따뜻한 분이시라는 인상이 남아 있습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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