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72)이수정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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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한문서적을 읽을 때 한문 문장에 [吏讀]식 [토’(吐)]를 달아 한글 어법에 맞게 읽는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한국인에게 한문성경을 읽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되리라는데 착안하여 만들어진 성경이 <현토 한한 신약성서(懸吐 韓漢 新約聖書)>이다. 이는 일본의 훈독(訓讀)성서를 참고했는데 번역은 다 되었으나 출판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이 1883년 11월부터 1884년 8월에 간행되었다. 한글성경 <마가의 전한 복음서 언해1>은 1885년 초 요코하마에서 1천부가 간행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에서 번역된 최초의 한글 성경이었다. 이것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들고 내한하였다.
“神의 子 耶蘇 基督의 福音이니 그 처음이라”로 시작되는 마가복음서는 그 역사적 의의 하나만으로도 천고에 두고 읽힐 성경이다. 이수정의 성경 번역은 유식자들과 일반인들을 염두에 둔 합리적 사고였고 또한 그만큼 그의 조국 선교 열망이 간절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이수정의 활약은 미국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 착수와 그 열정을 고조시키는 촉매 역할이 되였고, 성경 번역 같은 구체적인 활동은 초기 한국 기독교 수용사의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가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동생이 돈을 들고 와 보니 농업과 상업 연구가 아니라 성경번역을 하고 있었다. 나라의 금서로서 발각되면 본인은 물론 가문이 몰살할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수정은 “내게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또 고국으로 돌아갈 처지도 못된다. 나는 고국의 내 동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발견했다. 그것이 기독교이고 내가 번역하는 성경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성경 번역과 <교리문답>, <초 신자를 위한 탕자 회심> 그리고 <조선 천주교 소사>를 저술하였다. 이수정이 성경을 번역하고 있을 때 일본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이 매주일 모이면서 일본의 한국인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본국에 선교를 위해서 1884년 3월에 루미스(Henry Loomis) 목사의 이름으로 당시 요코하마에서 간행된 <세계선교평론지(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와 9월에는 <외국 선교사 잡지(The Foreign Missionary)>에 낙스(George W. Knox) 목사의 이름으로 <한국의 사정>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선교의 긴박성을 주장했다. 이수정은 12월 13일부로 발간된 <세계선교평론지>에 자기 이름으로 한국 전도의 중대성과 긴박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1884년 2월 뉴욕시 브루클린에 있는 라파엣 교회(Lafayette Presbyterian Church) 교인이며 미국 북 장로교회 해외 선교부 위원 중 한 명이던 맥윌리엄스(D. W. McWilliams)가 한국 선교를 위해 5,000달러를 희사한다는 편지가 미국 북 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왔다. 이는 미국장로교 측이 한국 선교를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맥윌리엄스의 제의는 선교부에 의해 곧바로 받아들여졌고 그 해 5월에 맥윌리엄스는 약속한 선교기금 1차분 1,250달러를 선교본부에 보내왔다. 이 <프레디릭 마킨드 기금>은 미국 북 장로회 한국 선교의 기초가 되었다. 선교부는 마침 상해에 있던 알렌이 한국 선교사로 자원하므로 그를 1884년 7월 한국 의료선교사로 임명했다. 한편 교육 사업을 겸할 선교사를 언더우드가 자원하자, 그를 교육 및 복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새문안은 언더우드 목사의 한국행을 가능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맥윌리엄스와 그가 속해 있던 라파엣 교회와의 남다른 인연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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