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聖)과 속(俗)은 하나라고 하는데 과연 나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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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전제하에서 교회와 세상,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거나 흑백논리처럼 적대관계로 보는 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세상 속에 교회를 세우셨다. 헬라철학은 성(聖)과 속(俗), 영(靈)과 물질세상을 구분하는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사고방식 위에 이루어졌다. 그들은 영(靈)은 선한 것이나 육(肉)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같은 이단은 하나님은 물질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물질은 악한 것이니까 하나님은 악한 신이라 규정했고, 반면에 예수님은 로고스 즉 말씀으로 오신 분이시니까 선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헬레니즘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에 빠지면 이런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 즉 유대교나 우리 기독교는 성(聖)과 속(俗)이 하나이고, 교회와 세상이 하나라는 일원론적(一元論的)인 사고방식 위에 모든 성경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을 공부할 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빼놓고 읽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그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해 가셨다.

또 우리가 신약성경을 공부할 때 예루살렘 교회를 빼놓고 읽을 수 있을까?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신 분도 같은 하나님이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신 하나님과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이 다른 분이라고 생각하는 이신론적(異神論的) 이단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셨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교회와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교회에서는 천국백성임과 동시에 이 세상 나라의 시민이다. 그래서 마땅히 천국백성으로서 교인의 의무도 다 해야 하겠지만, 세상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다해야 한다. 두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균형있게 잘 감당해야 하고, 어디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것이 건강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온라인 영상 예배를 예배라고 할 수 있느냐는 예배학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과연 우리 교회는 어디까지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라야 할 것인지 많은 논쟁들이 일어나고 있고, 마치 남남 갈등같이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들을 하고 있다. 서로 주장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과연 나는 어디에 서야 할지 솔직히 고민스럽다.

그런데 이런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이때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이 갈등 끝에 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줄에 서 버리는 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전술한 것 같이 교회와 세상 나라를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분명하지만, 세상 나라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고, 또 교회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다. 이상적으로는 교회와 세상 나라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면 좋겠지만, 사람들이 다 온전하지 못하니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경우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서로 갈등하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고, 또 서로 대립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고, 둘 중에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교회와 세상 나라가 서로 평행선처럼 한 꼭지점에서 만날 수 없다 하더라도 교인들은 그 평행선을 연결하는 사다리처럼 그 사이에 존재하면서 끝까지 이 갈등을 풀어가는 중심축이 되어야지 그 어느 한편을 선택하고 흑백논리로 흘러가면 결국 교회는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합하는 그 사명을 다 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7세기 동방교회의 성자라고 알려진 요한 클리마쿠스(Joannes Climacus)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라는 책을 썼다. 사다리는 자기를 밟고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세상 나라와 교회 사이에서 비록 내가 짓밟혀지는 한이 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등정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의 길이다.

이춘복 목사
<경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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