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가시나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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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전설에 가시나무새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새는 둥지를 나와 평생을 편히 쉬지도 못하고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주기 위해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일생에 한번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고 날카로운 가시나무 가시에 가슴을 찌르고 죽는다.
오래전 겨울이었다. 지금의 고양시 쪽으로 취재하러 갔다가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내 옆자리에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께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앉아 계셨다. 나는 목례를 하고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어디까지 가시느냐”며 고개를 돌렸더니 할머니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도하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무엇을 간구하시기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차창 밖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하얀 눈으로 덮인 산야가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설경(雪景)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 기사나 글을 쓴다고 하면서 잠시나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 까닭을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참으로 놀라웠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실명(失明)한 아들에게 한쪽 눈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눈을 나누어 주어 아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정녕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이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는 “남 보기에 조금 흉할지 모르겠지만 왜 일목요연하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면서 조용히 웃으셨다. 할머니는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떼다가 시골 동네를 찾아다니며 파는 방물장수였다.

성혼한 아들과 딸이 셋씩이나 있지만 도회지로 나가 저 살기에 바쁜데 어디 어미까지 챙길 겨를이 있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오두막이지만 내 집을 지키며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했다. 그래도 다가오는 명절에는 손자 손녀들에게 학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좀 넉넉히 주려면 얼른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놓아야 하는데 경기가 전과 같지 않아 걱정이라 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돈을 벌 수 있게 건강을 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찍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분도 늘 그런 식이었다. 자신은 못 드시고 못 입으셔도 오로지 자식이 먼저였다. 아들에게 육신의 일부를 주어 불편한 몸이지만 자식들에게 전혀 의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손자손녀들이 찾아오면 학비를 보태 주려고 행상에 나선 할머니. 그런 가운데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는 할머니의 밝은 모습은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의 삶은 가시나무새처럼 일생을 자식을 위해 애쓰다가 마지막 애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아침에 눈뜨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나는 할머니를 만난 후 범사에 감사하게 되었다. 나에게 할머니는 하나님이 보내 주신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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