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운동 – 자유와 질서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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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방역이라는 국가적인 틀 안에서 개인의 자유가 어디까지 제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종교의 자유를 생명처럼 여기는 한국교회의 입장에서는 1년이 넘게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교회와 국가가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갈등과 충돌, 봉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에서 자유와 질서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조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선택의 권한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사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개념을 가장 핵심가치로 여겼던 계몽주의나 자유주의와 달리 기독교는 자유가 정의와 질서의 기반 위에서 발휘되어야만 참된 자유로 받아들인다. 즉 선택과 동시에 그 선택의 방향이 의롭고 올바른 질서를 창조해내야만 비로소 참되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자유 자체가 아니라 자유의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다. 자유는 질서 안에서 온전해진다. 질서는 자유의 기반이 무너지면 강압이 된다. 이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운동은 그러한 자유와 질서의 의식이 조화를 이루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은 다음과 같다. 1. 오늘 우리들의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2.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당당하게 발표하라. 3.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공약삼장의 핵심은 자유의 정신을 발휘하라는 것과 배타적 감정을 배격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운동 참가자들에 대한 자유의지와 함께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을 갖지 말라는 것이며 일본 사람들에 대한 감정적 공격을 삼갈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고 투쟁하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사를 말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폭력과 무저항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것은 사실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숭고한 사랑의 정신이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헌신함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또한 나의 정당함을 남을 공격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희생해서 드러내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 정신이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참여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질서의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질서 안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청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의하게 한국을 점령하고 착취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을 의미했다. 불의한 것을 불의하게 바로잡는 것은 의로운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불의하다 하더라도 불의한 것을 정의롭고 정당하게 주장하고 당당하게 말할 때 비로소 그 주장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법치주의에서 말하는 절차적 정당성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해 아름답고 정의로운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자유를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 국가는 자유를 누림에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개인이나 단체, 교회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국가는 불가피하게 자유가 제한되는 개인과 단체, 교회에게 충분히 설득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렇게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때 충돌이 아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3·1운동은 지금 우리가 역사에 찾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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