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내 길의 한 줄기 빛 이만영 장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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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터전인 도림교회(20)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재단
및 한맹교회

이날 함께 자리한 김선태 목사는 “이만영 장로님은 영등포노회 남선교회 회장 때도 항상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지난 2005년 도림교회 80주년을 기념하여 80명 개안 수술할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라며 “실천적 믿음을 통해 타의 귀감이 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이만영 장로는 아내의 고희기념 기부금 2천만 원을 전달하면서 “이건 우리 집사람이 하는 것이고 저도 실(室) 하나를 또 기부하겠다”고 추가로 2천만 원 기부를 약속해 참석한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만영 장로 정희영 권사 부부의 이날 아름다운 기부로 김선태 목사는 “추진하고 있는 아이센터를 건립하는데 너무나 큰 힘을 얻게 되었다”며 “하루속히 아이센터가 완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글은 유의웅 목사가 은퇴 후 실로암복지재단의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것을 감사하는 이만영 장로의 축사이다.

“존경하는 유의웅 증경총회장님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재단에서 사무총장의 귀한 사역을 맡기신 것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유 목사님과 실로암복지재단에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익장이란 말이 있고, 성경에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시 92:14)는 말씀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유 목사님은 도림교회에서 평생 동안 목회하신 풍성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노회와 총회에서 뛰어난 지도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교계 여러 기관을 섬기신 탁월한 경륜이 있습니다. 유 목사님은 이와 같이 놀라운 경륜과 지도력과 봉사의 경험을 살려서 남은 생애에도 개 교회를 초월하여 총회와 한국교회 더 나아가 세계 도처에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년에도 헌신과 봉사의 귀한 열매를 많이 맺는 생산적인 삶이 되실 줄 확신합니다. 부족한 사람이 실로암아이센터 건축후원회원이 되어 적은 뜻이지만 건축헌금을 하게 된 것도 유 목사님의 지도와 권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재단이 유 목사님의 사무총장 사역을 통해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이만영 장로는 시작장애인들의 교회인 한맹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한맹교회는 도림교회에서 평생을 사역해 온 유의웅 목사가 실로암아이센터 건축모금 사역을 마친 후 설교 목사로 3년간 봉사한 기관이다. 유 목사는 현재 사용하는 한맹교회 성전이 낙후되었기 때문에 한맹교회 40주년을 맞아 새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모금하는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만영 장로는 한맹교회 40주년 기념예배에서 다음과 같은 격려사를 하고 새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헌금으로 3천만 원을 거부하였다.

“세계교회에 유래가 없는 한맹교회를 40년 전에 세우시고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루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입니다.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시고 영적으로 교계 지도자로 존경을 받으시는 유의웅 목사님을 한맹교회 목사님으로 모시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축복으로, 한맹교회 40주년을 맞아 새성전 건축계획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 맡기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만영 장로는 초기에는 유병관 목사와 함께 그리고 그 이후에는 유의웅 목사와 함께 도림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기관에서 봉사하는 일들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지는 일 하나 하나 꼼꼼하게 신경을 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 섬겼다. 이러한 기관사역들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별히 이만영 장로가 했던 기관사역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한국장로교복지재단과의 관계를 별도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한국장로교복지재단

복지재단과의 만남

이만영 장로는 한국장로교복지재단을 20년 이상 섬겨왔다. 그가 복지재단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는 정봉덕 장로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정봉덕 장로는 1955년 3월 대한신학교 입학 동기로 이만영 장로를 만났다. 이후 이만영 장로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1957년 총회전도부에 봉직하면서 도림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다시 이만영 장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봉덕 장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55년도 3월 20일에 제대해서 21, 22일 대한신학교 시험을 쳤어요. 이만영 장로님도 대한신학교에 들어와서 같은 학번으로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이만영 장로님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 내가 졸업한 후에 도림교회가 산업선교를 시작했거든요. 산업선교회가 1957년도부터예요. 내가 55년도에 총회에 왔는데 산업전도 때문에 도림교회를 왔다 갔다 하게 됐어요. 그래서 도림교회 이만영 장로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서로 문안하는 정도가 되었지요. 장로가 된 다음에 만날 때는 사업을 시작하고 계셨어요. 가만히 보니까 이분이 도림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가운데 유병관 목사님과 가깝게 지내다가 아들 유의웅 목사님에게로 넘어오면서 이만영 장로가 큰 일을 할 수 있겠다 하는 걸 느껴서 복지재단 이사로 내가 모셨죠. 그리고는 이사장까지 지냈어요.

이와 같이 이만영 장로가 한국장로교 총회 복지재단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봉덕 장로와의 만남이었다. 정봉덕 장로는 이만영 장로의 교회 활동과 그가 지난 성품 등을 종합하여 재단의 이사로 추천한 것이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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