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3.1운동 102주년과 한국교회사

Google+ LinkedIn Katalk +

1. 1% 인구, 50% 대표, 20% 참여, 80% 박해
1919년 3월 1일 기미년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기독교인의 인구는 1% 남짓이었다. 그런데 이 한국교회가 역사적인 일을 한다. 당시 겨우 1% 남짓한 인구로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에 해당하는 16인을 한국교회에서 낸다. 미국교회협의회는 ‘3.1운동 비사’(The Korean Situation)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펴낸 일이 있다. 거기 이런 말을 나온다. “표독한 일본 식민통치 하에서도 유일하게 소망을 저버리지 않은 한국민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한국의 예수교인들입니다.”
1% 남짓한 인구로 50%에 달하는 민족대표를 낸 한국교회,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1%의 인구로 20%의 참여를 해낸다. 다시 말하면 1명이 20명의 참여를 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놀라움은 여기 그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이 3.1운동으로 인한 일제의 박해를 80%나 당하고 있었다. 1명이 80명의 박해를 당한 것이다. 과연 민족의 십자가를 그 온몸에 짊어지고 한국교회가 간 것이다.
한국교회사학 연구의 대석학 민경배 교수는 한 번은 우리나라 백지도 두 장을 가지고 실험을 한 일이 있다. 백지도 한 장에는 한국교회가 있는 곳을 표시했다. 다른 백지도 한 장에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을 표시했다. 그리고 두 장을 포개어 살폈다. 놀랍게도 그 표시는 대개 일치하고 있었다. 한국교회가 3.1운동의 조직과 통로를 제공했다는 증거가 여기 있다.

2.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3.1운동
후일 건국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이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식민지 조선에 환기시키고 이를 계기로 3.1독립운동을 일으키도록 독려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흥미롭다. 2016년 출간된「이승만의 분노」는 전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저서이다. 이 책은 이승만 저서와 연구서 등 38여 권에 달하는 내용을 압축, 출판한 것이다.
이 책과 수년 전 전 목사가「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내용 등에 의하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원래 독일, 영국, 프랑스의 국외 확장을 염두에 두고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자기들 나라의 일을 스스로 결정할 것을 주창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충심을 다하던 예수교인 이승만이 이를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로 적극적으로 연결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이 때 한성(서울), 연해주, 만주(심양), 상해, 동경에 있는 민족운동 단체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평소에 이들 각 지역의 단체들에서 임원 등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연락과 격려, 지도가 쉬었다. 군국주의가 물러가고 세계가 평화의 새 시대로 전환하는 이 때 군국주의 일본의 시대 대세를 역행하는 광동에 분연히 항거하여 일어났던 3.1 독립운동의 출발에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위대한 공헌이 있었다는 사실은 참 새롭고 또 감격적이다. 이승만 그는 한국의 예수교인이요, 장로가 아니었던가.
2021년 다시 한 번 나라를 되살리고 세계사의 대세를 새롭게 했던 한국교회의 사명이 빛을 발하기를 기도한다.

류금주 목사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