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직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

Google+ LinkedIn Katalk +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가족과 직업까지도 남겨둔 채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일은 대단히 놀랍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배후엔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이루시면 자신들도 그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을 기대하는 다분히 이기적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청한 일은 그 대표적 증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마치 유력한 정치인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듯 세상 앞에 당신의 메시아 되심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길 기다렸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볼 때는 때가 무르익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이적을 통해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고, 변화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말라기 4장 5절의 성취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엘리야가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긴 했지만, 변화산에서 내려올 때만 해도 제자들은 매우 흥분 상태에 있었습니다. 산 아래 가면 산 위의 일을 사람에게 알리고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물론 영원히 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고, 아직 메시아임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앞에 당신의 메시아 됨을 선포하려면 어떤 조건이 채워져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조건으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9절). 즉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은 고난과 부활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는 메시아의 영광을 말할 때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에 부임한 사장님이 진정한 사장님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물론 취임식이 끝나면 그날부터 사장님입니다.

그러나 직원들의 마음속에서 진정한 사장님이 되려면 직원들과 고난을 받으면서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후입니다. 어려운 교회에 부임한 담임목사가 부임하는 날부터 담임목사이기는 하지만, 존경받는 진정한 목사가 되는 것은 눈물로 기도하고 수고하여 교회가 부흥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부목사님이 다른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자신이 부목사 시절에 모시던 목사님이 목회하듯 처신하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모시던 그 담임목사님은 오랫동안 성도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교회를 위해 흘린 눈물과 기도가 축적되어 있고, 거기서 권위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제 막 담임목사로 부임한 사람은 그런 권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담임목사라는 것만 내세워 처신하면 매우 잘못입니다. 장로 장립식이 끝나면 장로가 되지만, 진정한 장로가 되는 순간은 교회를 위해 온갖 수고와 고난을 감당하고 은퇴하는 날, 성도들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라며 마음의 박수를 칠 때입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면 호칭은 대통령이 된 것이지만, 국민의 마음에서 진정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눈물로 충성한 후에 퇴임하는 날 박수를 받을 때입니다. 그 이전에, 아직 아무런 일도 하기 전에, 백성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린 일 없이 대통령 대접을 받으려 한다면 나라가 고달파집니다.
고난 없이 취임만으로 사장, 담임목사, 장로, 대통령, 장관 등이 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직은 “내가 사장, 내가 장로……”라고 말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아직 말하지 않아야 할 때’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단지 주어진 고난의 십자가를 묵묵히 질 때입니다.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