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소확행과 인생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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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어 중에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있다. 소확행(小確幸)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리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수필집에서 처음 만들어 사용한 신조어이다.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돈된 깨끗한 속옷을 볼 때, 청결한 하얀 셔츠를 입을 때 등과 같은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감을 소확행이라 부르고 일본의 청년 세대에서 하나의 문화트렌드를 만들었다. 행복은 인생의 커다란 성취에서 찾기보다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찾을 수 있고 맛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와 같이 최근 소확행이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같은 단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요즘 젊은이들은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기보다는 일상의 사소한 일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줄어들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성취보다는 개성과 자유와 행복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그러한 만족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할 때 오히려 큰 성취가 가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더 큰 욕망과 성취를 위해 그저 앞만 바라보며 바쁘게 달려온 것이 우리의 삶이었다면, 옛 선인들의 삶은 오히려 지금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소확행의 삶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서 인생삼락(人生三樂) 즉,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찾아왔다. 다산 정약용은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 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나이 들어 다시 오는 것, 나 혼자 외롭게 어울려 찾던 곳을 마음이 맞는 벗들과 함께 오는 것이 가장 소중한 세 가지 즐거움이라고 했다. 추사 김정희는 책읽고, 사랑하며, 풍류를 즐기는 것(一讀, 二好色, 三飮酒)을 인생삼락이라고 했다. 17세기 학자 신흠은 인생삼락으로 문을 닫고 앉아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 열면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면 마음에 드는 경치를 즐기는 것을 들었다.

인생의 즐거움을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역시 그 깊은 근원을 찾아가 보면 공자의 인생삼락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한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논어의 첫 구절에서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하고 있는데, 그 평범함이 놀랍기도 하지만, 음미해 보면 볼수록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지고 인생의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공자의 인생삼락을 다시 풀어본다면, 인생의 첫째가는 즐거움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평생 그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웃들과 깊은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것이며, 셋째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가서의 말씀과 같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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