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보아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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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책이 있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제목을 보고 의아해했다.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달리셨는데 하나님께서 달리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몰트만은 초대교회 이단이 주장한 것처럼 성부수난설을 주장하기 위해 이렇게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성자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부 하나님시라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몰트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십자가 위에 하나님께서도 함께 달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눈에 보이는 예수님만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십자가를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성자 하나님의 관점에서 벗어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게 시야를 넓혀 주는 것이다.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달리셨다고 할 때 새로운 영적 통찰을 갖게 된다. 우선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버리셨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다. 이 절규는 몇 가지 의문을 갖게 한다. 하나는 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의연히 맞지 못하시고 이렇게 절규하셔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들과 많은 순교자들이 의연히 죽음을 맞았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초라한 최후의 모습을 보이셨는가 라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왜 평소와 달리 여기서는 아버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라고 하셨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절규는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왜 버리시냐고 항변하신 것이다. 여기 버리셨다는 말에 그 답이 담겨 있다. 버리심은 그 어느 죽음과는 다른 저주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기에 예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그 어떤 성경말씀보다도 깊이 묵상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먹지도 않고 같은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깊은 묵상 끝에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버리셨다!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몰트만은 이 말씀을 그냥 버리신 것이 아니고 내어주신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나님께 죄로 인해 버림받아야 할 우리를 다시 용납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을 버림받은 상태로 내어주셨다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이다.
다음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과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는 점이다. 유대교 신학자 아브라함 헤쉘은 구약이 소개해 주는 하나님은 고통 받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속박을 받으시거나 고통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할 때 분노를 느끼셔야 했고, 저들이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릴 때 후회를 느끼셔야 했고, 저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길 때 질투를 느끼셔야 했고, 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인내의 고통을 느끼셔야 했고, 그리고 저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매를 드셨을 때 저들의 눈물의 고통을 보시고 아파하셔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성부 하나님은 죄로 신음하고 있는 우리 때문에 이미 고통을 겪으셨는데, 다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버리시면서 더 큰 고통을 겪으신 것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다고까지 말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성자 하나님이 겪은 고통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을 겪으셨다고 말한 것이다. 오래전 한 TV드라마의 대사가 크게 유행됐었는데 그 대사가 생각이 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마 십자가 위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아들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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