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어둠 속에 ‘빛’을 전하는 한국점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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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서울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암사동에는 우리나라 35만여 시각장애인들과 400만여 독서장애인들에게 빛을 전하는 한국점자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도서관 설립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아무나 할 수 없었던 도서관이기에 의미가 분명 남다르다. 한국점자도서관은 이사장 육근해 장로(왕십리중앙교회)의 선친이자 시각장애인이셨던 고(故) 육병일 안수집사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점자도서관이다. 육병일안수집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질 높은 교육의 기회를 얻었고, 이후 근사한 침술원을 개원하고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과 같은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고 한다. 당시엔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장애인은 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던 시대여서 가진 것이 없는 장애인들은 더욱더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다. 육병일 관장은 자기와 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아는 것이 곧 힘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라는 취지로 한국점자도서관을 설립하였다. 그리고는 점자책을 한 권 한 권 제작하였고, 카세트테이프 음성도서를 만들어 시각장애인 개개인에게 무료로 대출하였다. 점자성경을 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여 배포하는 일도 아버지 육병일 안수집사 때
부터 지금까지 신앙적 믿음으로 막내딸 육근해 장로가 대를 이어 그들을 위한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 시각장애인 선친의 자비량으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한국점자도서관은 1981년부터 시작한 장애인복지보다 훨씬 앞서는 기관임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도 장애인복지도 열악했던 척박한 대한민국에 신앙의 힘으로 문화적, 복지적, 교육적 가치를 위하여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관을 자비량으로 설립하고 대를 이어 시각장애를 가진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선진화를 위한 일본점자도서관과 자매결연을 맺었고, 교육부에 지속적으로 건의를 하여 한국 최초 점자도서관 설립 근거를 제정, 1호로 등록을 하고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전하는 점자도서관이 됨으로써 후발 도서관 설립의 모태가 되었다. 1980년대 거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는 이동도서관 시대를 열었고, 대리투표를 직접투표를 전환시켜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이끌어냈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알권리, 읽을 권리를 위한 정부 간행물 제작을 시작하기도 했다. 또한 과거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도서는 점자타자기로 제작되어 오직 1부만 소장하고 대출함으로 무료 우편 대출시 분실이나 망실이 많아서 전체 10권, 30권 중에서 중간중간 빠지고 읽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자료 제작에 있어 디지털시대를 열어 점자도서를 DB화하면서 점자프린트기로 제작, 일반 워드로 입력된 자료를 점자로 제작하고, 복본화가 쉬워서 분실이나 망실의 경우 손쉽게 복구가 가능해졌다.

▐ 아날로그 점자책에서 디지털 책으로

2000년대에는 선진국이 시작하는 시각장애인과 독서장애인들을 위한 전자책 데이지(Daisy) 형식을 도입하고 함께 발맞추어 선진적인 전자책을 서비스하기 시작하였고, 국제데이지(Daisy)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 한국의 대표이자 협회에서는 이사로서 시각장애인들의 세계화에 직접 관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해 오는 동안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점자책을 제작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현재 가치 수십억의 재산은 온데간데없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폐관의 위기까지도 가는 아픔이 있었다. 다행히 정부가 한국점자도서관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1997년 연건평 280여 평의 4층 건물을 신축하여 무상 위탁해 줌으로써 안정적 기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과 함께 주님께서는 고(故) 육병일 초대 관장님을 천국의 자리로 부르셨다. 그동안의 수고와 헌신에 평안을 허락하시고, 모세 후에 여호수아처럼 그의 막내 딸 육근해 장로를 예비하여 명맥을 잇게 하셨다.

▐ 순례자 같은 길을 따라

아버지 육병일 초대 관장의 순례자 같은 길을 따라 점자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육근해 장로는 주님과 그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시각장애를 넘어 독서 장애인까지 이용자를 확대하였다. 자료는 점자와 데이지(Daisy) 외에 장애 유형별, 연령별 맞춤형 자료로, 점자라벨도서, 디지털토킹북, 묵점자촉각도서, 보이스 북, 큰 글자 도서, 읽기 쉬운 도서, 수화로 함께 읽는 도서, 다국어 도서 등을 직접 개발하였다. 시각장애 형이 비장애 동생이 읽는 그림책을 읽지 못해서 늘 소외감을 느끼거나,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게 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라는 좌절감에 빠질 수 있는 것을 점자라벨책을 통해 시각장애 형은 동생에게 “내가 너에게 책을 읽어줄게”라며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자존감이 회복되고 자신도 비장애 동생처럼 동일한 생각과 동일한 환경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시각장애 부모는 비장애 자녀에게 여느 비장애 부모처럼 책을 읽어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들 한단다. 묵점자촉각도서는 ‘뾰족뾰족’과 같은 의태어, 의성어 그리고 독수리 깃털, 물고기 비늘과 같은 사물의 개념을 촉감화하여 이해시키는 것으로써, 선천성과 어려서 시각장애가 된 아동들에게 정확한 사물의 개념을 통해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주게 된다고 한다. 또한 2008년부터는 장애아동들의 책읽기와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한 꿈과 비전을 키워주기 위해 찾아가는 이동도서관 ‘북(Book)소리 버스’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 미래를 향한 비전으로

2012년에는 46년간 걸어온 장애인들의 문화복지를 한눈에 볼수 있는 역사사료관을 개관하여 학계, 도서관계, 장애계층에 종사하는 이들의 중요한 학습 장소가 되고 있었다. 유기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한국점자도서관! 그 도서관을 이제 법인화하여 관리 운영하는 육근해 이사장에겐 꿈이 있다. “우리 장애아동들이 이담에 커서 ‘내가 어려서 읽은 책 한 권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어요!’라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각장애 아동들이 ‘나의 꿈은 안마사가 아니야, 나는 커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될 거야, 정치가가 될 거야!’라며 다양한 꿈을 키워가길 바래요.” 이사장 육근해 장로는 1969년 시각장애인이셨던 선친 육병일 관장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점자도서관을 현재 52년의 역사를 이
어가며 시각장애인들의 지식정보 환경의 근간을 만들어 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사회적 환경에 발맞추어 인터넷 도서관을 개관하고 국제적인 묵점자촉각도서를 도입하여 서비스함으로 시각장애인을 넘어 노환이나 다양한 불편이 있어 독서 장애인들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 운영하고, 촉각도서, 묵점자 혼용도서, 점자라벨도서 등 개발하여 장애 아동들의 독서환경의새 장을 열어주고 있다.

▐ 2019년 이병목 참사서상 수상

2019년에는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고 부산 벡스코컨벤션에서 개최된 전국도서관대회에서 대한민국 사서들에게는 큰 영광인 참사서상을 수상했다. 도서관의 역할 강화 및 도서관의 고유한 사명 달성에 크게 기여한 참사서를 발굴하여 표창하고 그 공적을 치하하여 사서직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도서관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아마도 선친의 신앙적 가정사나 육근해 장로의 인격으로는 거절했을 터, 그러나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고 했다. 칭찬을 통해 표본이 되어 또 다른 사서가 등장하고 이 땅에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일에 끝없이 이어지는 사명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 말씀으로 눈을 뜨게 하는 사명을

두 번에 걸쳐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함으로 한국장애인 서비스의 국제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청송교육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는 누가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을 붙들고 왕십리중앙교회(양의섭 목사 시무)를 섬기며 아버지의 삶을 이어 장로가 되었고, 매일매일 주시는 주의 은혜로 복음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말씀으로 다시 눈을 뜨게 하고 있다.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이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기쁨의 사역을 감당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육근해 장로를 볼 때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에 심청이가 있다면, 시각장애인을 위해 육근해 장로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가오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이사장 육근해 장로를 만나는 동안 복음성가 ‘사명’이라는 곡조가 떠올라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사랑하오’
한국점자도서관을 둘러보며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화해 갈까 저절로 기대감이 생겨난다. 어둠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서 장애인들에게 세상의 빛을 전하는 한국점자도서관! 육근해 장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관장으로 섬기던 중 50주년을 앞둔 3년 전 점자도서관의 더 큰 발전을 위해 시각장애인을 관장으로 취임시키고 본인은 이사장으로 남아 도서관의 외부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곳은 진정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곳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곳이었다. 더 큰 봉사의 지경을 넓혀나가기 위해 관심 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구성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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