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신은 청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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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대동강에서 최초로 순교한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 27세,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4명의 친구들과 순교한 짐 엘리엇 선교사 29세, 영국 침례교가 파송한 근대 선교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인도선교사 윌리엄 케리 32세, 모라비안교의 선구자 진젠도르프 27세, 학생 지원자 운동으로 세계선교의 부흥을 일으키고 아프리카로 떠난 사무엘 밀즈 35세, 일생을 바치고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난 리빙스턴 28세,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 22세, 위클리프 성서번역 선교회의 창시자 타운센드 21세,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된 언더우드 24세, 목숨을 건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어 갔던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청년’이었다.
성경의 인물도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들도 한결같이 청년이었다.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 30세,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고,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시기를 성경학자들을 30세 내외로 본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부르셨으니 노인이 아니냐고 하지만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으니 요즘으로 계산하면 75세는 33살이다.
그러나 사실 청년을 가늠하는 건 나이가 아니다. 나이만 젊다고 청년이 아니란 말이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도 청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청년인지 아닌 지를 가늠할 수 있는 성경적 지표가 있다.
첫째, 청년은 도전하는 사람이다. 청년의 시기는 한마디로 무엇보다 불투명한 미래의 연속이다. 졸업, 취업, 결혼… 이러한 막연한 현실 속에서 청년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은 도전이다. 아브라함은 75세(청년때)에 자신이 살던 익숙한 환경을 떠났다. 요셉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젊었을 때 가족과 생이별하고 애굽으로 팔려갔다. 준비나 환경이 다 되어있으면 누가 못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오직 청년만이 할 수 있는 게 바로 ‘도전’이다.
둘째, 청년의 특징은 열정이다. 열정은 열심과 좀 다르다. 열심은 성격과 성향일 수 있지만 열정은 누구나에게 있는 특별한 상황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다. 왜 우리는 포기하는가?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이 도와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솔직해지자. 그냥 간절히 원하지 않아서다. 내가 그걸 간절히 원하는지 그렇지 않는 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려움이 오고 비난과 내가 바라던 정반대의 상황을 맞닥뜨려 보면 안다. 간절히 원한다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국 ‘할 수 없음’이 아니라 ‘하려고 하지 않음’인 것뿐이다.
셋째, 청년은 반드시 즐겁게 헌신한다. 헌신이란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걸 말한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오직 선한 의지와 충동이 청년의 마음을 감동할 때만 가능하다. 그 충동은 세상과의 충돌을 야기하지만 청년은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을 희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청년이다. 신이 인간으로 오는 도전보다 극한 도전이 있겠는가, 그는 삼년의 공생애 동안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열정으로 식사할 겨를도 주무실 시간도 모자랐다. 그리고 결국 억지로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향해 자신의 몸을 바치지 않으셨던가. 그러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그냥 목사나 장로가 아니라 청년목사 청년장로이다. 교회는 지금 더더욱 그러한 청년을 필요로 하고 그 청년이 새로운 교회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청년주일을 맞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정 청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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